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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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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학을 선도하고 고등과학원의 초석을 다진 세계적 수학자

앨버트 문제 해결 통해 양자역학 일반화를 위한 수학이론 확립 기여
대수이론을 미분기하에 응용하여 아핀접속의 연구 방향 제시
고등과학원 발전과 국제교류 촉진을 통해 한국 수학의 위상 제고

대수학을 선도하고 고등과학원의 초석을 다진 세계적 수학자
故명효철
앨버트 문제 해결 통해 양자역학 일반화를 위한 수학이론 확립 기여
대수이론을 미분기하에 응용하여 아핀접속의 연구 방향 제시
고등과학원 발전과 국제교류 촉진을 통해 한국 수학의 위상 제고 학력
1956~1960 서울대학교 수학과 졸업
1960~1962 서울대학교 대학원 이학석사(수학)
1966~1970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대학원 이학박사(대수학)

경력
1970~1995 미국 노던 아이오와 대학 수학과 교수
1979~1980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1995~2002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 교수
1996~2007 고등과학원 부원장, 원장직무 대리, 교수부장
2007~2010 고등과학원 원장

포상
1986 최우수 교수상(University of Northern Iowa)
1990 Donald Mckay 최우수 연구상(University of Northern Iowa)
2006 서울시 문화상
2009 수당상 1948년 수학자 앨버트(Abraham Adrian Albert)는 리 대수학의 일반화로서 리 허용 대수를 도입하고 관련된 몇 가지 문제와 추측을 남겼다. 많은 연구자들이 앨버트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연구했지만 1970년대에도 부분적으로만 해결된 상태였다. 문제가 해결된 건 그로부터 40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미해결로 남아 있던 ‘앨버트 문제’를 한 한국인 수학자가 풀어냈다. 1980년대 스스무 오쿠보(Susumu Okubo) 미국 로체스터대 명예교수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한 한국인 수학자는 해결책 제시뿐만 아니라 이론의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함을 증명해내며 연구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앨버트 문제 해결을 통해 양자역학 일반화를 위한 수학이론 확립에 기여한 탁월한 수학자, 명효철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196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는 공군사관학교 수학교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2년간 서강대학교 수학과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그는 1966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시건주립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수학하며 Marvin Tomber 교수의 지도하에 리 허용대수에 관한 연구로 1970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박사논문:Flexible Lie-admissible algebras). 곧바로 노던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Northern Iowa)의 수학과 교수가 된 그는 25년간 재직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연구 중심은 리 허용대수, 즉 교환자를 정의하면 리 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비결합 대수(nonassociative algebras)의 구조를 찾아내고 이를 분류하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앨버트 문제와 추측을 해결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세계 수학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48년에 앨버트는 A^-가 반단순 리 대수(semisimple Lie algebra)일 때 유동 대수 A(flexible algebra A)를 결정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물리학자 오쿠보(Susumu Okubo)와 명 교수는 1978-1980년 A^-가 유한차원의 단순 리 대수일 때 리 허용 대수 A의 구조를 분류하는 연구 성과들을 발표했다. 이 연구는 수학의 앨버트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양자역학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는 대수 모델이 유동 리 허용 대수라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1986년 명효철은 리 허용 대수를 말체프 허용 대수까지 확장하는 연구를 했고, 이를 종합하여 1986년 ‘Malcev-admissible algebras’를 출판했다. 이 저서는 1988년 미국수학회 ‘Bulletin of AMS’에 리뷰 되기도 했다. 서평을 통해 “이 책은 아마 상당기간 리 허용 대수를 공부하려는 수학자들에게 최고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수학자, 물리학자들과의 공동연구는 198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는 고전역학의 일반화에서 유래한 대수의 문제와 대수 이론을 미분기하에 응용하는 연구를 추진했다. 특히 스페인 수학자 엘뒤크(A. Elduque)와 공동연구를 통해 위상다양체 S6, S7, S15 위에서 모든 불변아핀접속(Affine connection)을 완전히 결정했다. 이 연구는 아핀접속의 연구에서 새로운 방향과도 구를 제시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1996년에는 엘뒤크와 공동으로 Mutational Alternative Algebras를 출판했으며, 이 책 역시 Bulletin of AMS에 리뷰됐다. 그의 일생에 걸친 연구와 교육, 그리고 수학 발전을 위한 헌신적 노력은 여러 형태로 인정받았다. 1984년 노던 아이오와대학에서 Distinguished Scholar Award가 제정됐을 때, 만장일치로 최우수 교수상에 선정됐으며, 이후 1986년에도 같은 상을 다시 한 번 수여 받으면서 동 대학에서 이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교수가 됐다. 또한, 1990년에 제정된 Donald N. Mckay 최우수 연구상 1회 수상자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한국에서 수학자 양성과 수학 연구 수준을 높이는 일에도 기여했다. 1979년 미국 AID(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프로그램 초빙교수로서 1년간 서울대학교를 방문해 여러 우수한 대학원생들을 지도했다. 명 교수는 이때의 기억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서울대 AID 프로그램의 방문교수로서 1년 동안 강의할 기회를 가졌었다. 그 당시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열정과 의욕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이들을 통해 향후 10여 년 동안 한국 수학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제 5세대로 해외 유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현재까지 한국 수학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대한수학회소식 ‘대한수학회 창립 60주년에 즈음하여’) 1993년에는 방문교수로서 1년간 포스텍 수학과에 재직했다. 이를 계기로 1995년 귀국하여 KAIST의 수학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1996년 10월 이후부터는 한국 고등과학원 부원장 겸 교수부장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고등과학원 원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수학과 순수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필즈상 수상자인 예일대학의 에핌 젤마노프(Efim Zelmanov)를 석좌교수로 유치한 일은 고등과학원의 향후 방향성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발단이 됐다. 젤마노프 교수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선구안 덕분이었다. 그는 대한수학회에 다음 필즈상 수상자는 번사이드 문제를 해결한 젤마노프 교수가 틀림없으니 강의록 시리즈를 제작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바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젤마노프 교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그의 혜안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명 교수는 그를 고등과학원 수학분야 석학교수로 초빙해 고등과학원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했고, 국내적으로도 고등과학원이 수학과 과학의 최고 연구기관으로 인정받도록 힘썼다. 이후 고등과학원은 그가 국제 수학계에서 쌓아올린 신뢰와 교류관계에 힘입어 많은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고 공동연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대학수학회와 한국여성수리과학회 학술사업을 적극 후원하고 개인적으로 고등과학원에 3억 원을 기부하는 등 한국 수학의 발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한국 수학계의 개개인들이 어느덧 모르는 사이에 이미 국제 수준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국제 수학계는 이제 한국 수학을 동등한 수준에서 선의의 경쟁상대로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즉, 한국 수학계는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이 아니며 세계 수학계의 일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쪼록 대한수학회는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발전에 부응하고, 나아가 수학계 개개인의 역량을 집결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2006년 ‘대한수학회 창립 60주년에 즈음하여’, 2010년 대한수학회소식 제130호 ‘명효철 선생님을 추모하며’) “생전의 선생님은 후배 교수와 젊은 연구원, 직원들에겐 인생과 학문의 멘토이자 큰형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특유의 강인한 추진력과 높은 기준, 단호한 성격으로 때론 후배들을 힘들게도 하셨지만, 이내 넉넉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금종해, 고 명효철 원장님 추모 논문집, 2015년)

개인의 학문적 욕심이 아닌, 그 너머를 위한 선구안으로 대한민국 수학의 위상을 높인 수학자 명효철 교수. 때로는 냉철한 선생님, 때로는 푸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수학의 미래를 보듬었던 그를 많은 후학들은 존경했다. 기초과학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의 리더십은 여전히 그들 속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