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스토리 뉴스

스토리 뉴스

현대 대수기하학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아이비리그 첫 한국인 수학교수

유한군 코호몰로지에 대한 선도적 연구로 대수적 K-이론의 주춧돌 마련
교육 및 교류를 통해 한국 현대수학 인재양성과 연구발전에 일조

현대 대수기하학의 세계적 연구자이자 아이비리그 첫 한국인 수학교수  임덕상
유한군 코호몰로지에 대한 선도적 연구로 대수적 K-이론의 주춧돌 마련
교육 및 교류를 통해 한국 현대수학 인재양성과 연구발전에 일조학력-1946∼1954 서울대학교 수학과 이학사, 1955∼1957 미국 인디애나대학 대학원 이학박사(대수기하학)
경력- 1957∼1960 미국 컬럼비아대학 박사후연구원, 조교수, 1960∼1965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조교수, 1965∼1982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수학과 교수, 학과장, 1972∼1975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본부평의원, 1978∼1981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장학위원“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의 영향으로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한반도는 현대수학 연구가 가능한 여건이 아니었다. 심지어 1945년 8월 당시 한반도에는 현대수학을 연구한 경험이 있는 수학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상구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현대수학의 불모지였던 광복 후의 대한민국. 싹이 자라지 않을 것만 같던 그곳에 현대수학의 씨가 움틀 수 있었던 건, 머나먼 타국에서 학문 발전을 위해 애쓴 수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 한국인 수학자인 임덕상 교수는 군 코호몰로지 연구, 변형이론 연구를 통해 대수기하학 발전에 기여한 세계적 연구자였다. 아이비리그 첫 한국인 수학교수이자 학과장으로 명성을 떨친 그는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와 필라델피아 교민회 활동을 통해 한인 과학기술계와 지역사회 교포들의 교류와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며 조국의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임덕상 교수는 1928년 출생했다. 그는 1946년에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3년여 한국전쟁을 겪으며 8년만인 1954년에서야 졸업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대학을 다닌 그는 이화여고 교사로 활동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권경환 박사(미시간주립대 수학과장 및 Postech 수학과 석좌교수 역임, 2018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는 당시 서울대 수학과에 다니던 임 교수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임 교수는 1955년경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1955년 인디애나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단 2년만에 1957년에 유한군의 코호몰로지 이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조지 와플스(George Whaples)로 학위논문 제목은 “An Axiomatic Approach to Cohomology Theory of Finite Groups”였다. 임 교수는 1965년 펜실베니아대학의 교수가 되기 전까지 컬럼비아대학과 브랜다이스대학에서 강의하며 연구 경력을 쌓았다. 이 기간 동안 대수기하학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당시 브랜다이스대학의 수학과 학과장이었던 오스카 골드먼(Oscar Goldman) 교수는 임 교수의 능력을 알아차리고 컬럼비아대학에 있던 그를 영입했다. 1960년부터 5년간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조교수로 활동한 임 교수는 골드먼 교수가 펜실베니아대학 수학과로 옮겨가자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그는 아이비리그의 첫 한국인 수학교수가 됐다. 임 교수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수학과 대학원과 학부의 학과장을 차례로 맡았다. 연구업적을 인정받은 그는 선출직인  Transactions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의 편집인과 Journal of Algebra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임덕상 교수의 주요 업적은 첫째, 유한군 위에 정의된 모듈의 분류이론을 만든 것이다. 1959년 그는 당시 수학계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카르탕과 아일렌베르크(Cartan-Eilenberg)가 제기한 호몰로지 대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파이를 유한군이라 하면 정수군환 Z(파이)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모듈 중에서도 특히 사영차원 (projective dimension)이 유한일 조건과 이 모듈의 코호몰로지가 자명할 조건이 서로 필요충분 관계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 이 논문의 중심 정리다. 이 연구 결과는 “대수적 K이론”으로 정립되는 연구 분야의 토대가 되었고, 그를 군 코호몰로지 이론의 초기 선구자로 인정받게 하였다.그의 둘째 주요 업적은 독창적인 공리론적 접근법을 이용하여 대수기하학의 한 분야인 변형이론(deformation theory)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쿠라니시(Masatake Kuranishi)에 의해 시작된 변형이론에 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1972년에 ‘Lecture Notes in Mathematics’ 시리즈 중 하나인 <세미나 노트 SGA 7 I(Groupes de Monodromie en Geometrie Algebrique)>에 발표했다. 
특히 이 변형 이론에 대한 논문은 1966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그의 절친한 친구 알렉산더 그로텐디크(Alexander Grothendiek)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로텐디크는 ‘20세기 최고의 천재 수학자’로 일컬어질 정도로 함수해석학과 호몰로지 대수학, 정수론, 대수기하학 분야에서 거대한 업적을 남긴 수학자다. 1972년 변형이론에 대한 내용을 담은 <세미나 노트 SGA 7I>도 그로텐디크와 함께 저술했는데, 이후 Springer-Verlag에서 출판되어 널리 인용됐다.임 교수는 재미 과학기술자들의 조직과 지역 한인사회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는 1971년 창립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의 초대 본부평의원(1972-1975)과 초대 장학위원(1978-1981)으로 활동했다. 또한 제4대 필라델피아 한인회장, 서재필 기념비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역 한인사회에 봉사했다.그는 한국의 현대수학 분야 연구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불모지 상태를 겨우 벗어났으나 현대수학이 뿌리내리지 못했던 자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바람직한 방향 설정을 위해서라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1971년 대한수학회 초청으로 1주일간 특별강연회를 가졌던 그는 당시 홍릉 KIST에 석사과정 응용수학과를 설립해 투자를 하겠다는 소식에 반대 의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다. “수학의 주류를 무시하고 응용수학에 치중한다는 건 말도 안돼요. 본질적인 수학을 중시하면 하지말래도 응용수학을 하는 사람이 생겨요. 응용수학에 치중하는 현상은 한국수학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요소가 될 겁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수학에 대한 지원은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봉급도 제일 많아요. 그리고 세계적 연구기관인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나 프랑스의 고등과학연구소(IHES) 연구진의 90%는 수학자와 물리학자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은 수학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실이 아닐까요.”
(동아일보 1971년 7월 14일 인터뷰)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인재양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국내 수준이 낮았던 탓에 그 당시의 한국 현대수학 연구는 재미수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에 임 교수는 조국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인재양성 부분에 힘을 보탰다. AID 차관계획에 따른 초청 강의에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AID 차관계획에 의해 서울대학교에서는 1975년부터 5년간 재미수학자들을 초빙해 강의를 진행했는데, 임 교수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서울대에서 대수기하학을 강의하는 등 한국 현대수학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힘을 기울였다. “1960대 초반에 이미 이임학과 임덕상같은 세계적인 젊은 한국인 수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 젊은 수학자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이상구 성균관대학교 수학과 교수)한국 과학기술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국가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학문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에 현대수학을 뿌리내리게 한 재미 수학자들. 그 중심에 임덕상 교수가 있다. 아이비리그의 첫 한국인 수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으로서 위상을 켜켜이 쌓아간 그는 대수기하학의 세계적 연구자로 이름을 남겼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영웅들의 이름처럼, 그의 이름도 온 국민의 마음에 새겨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