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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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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학계의 위상을 높인 세계적 수학자

위상수학의 다양체 연구에서 세계적인 업적 성취 /
포스텍 수학과의 창립과 발전에 기여 권경환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47 / 위상수학의 다양체 연구에서 세계적인 업적 성취
    포스텍 수학과의 창립과 발전에 기여 권경환 한국 수학계의 위상을 높인 세계적 수학자

학력 - 1952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이학사(수학), 1954 미국 미시간대학 대학원 이학석사(수학),1958 미국 미시간대학 대학원 이학박사(수학)
    경력 - 1962 ~ 1965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수학과 교수, 1964 ~ 1965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연구원, 1965 ~ 1993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수학과 교수, 1990 ~ 1999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 교수

궁핍했던 당시 수학을 전공하며 방정식이나 푸는 게 다소 죄스럽기는 했지만, 수학이 너무 좋아 어쩔 수 없었다.
    수학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고로 운도 통하지 않는다. 권경환 교수는 이 같은 수학의 원칙을 잘 알고 있었다. 빼곡하게 적은 계산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일상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보이는 순간, 수학자는 ‘유레카’를 외치며 다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결같은 자세로 수학의 길만을 고집했던 권경환 교수. 그의 위대한 걸음으로 한국 수학계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권경환 교수는 192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경기중학교에 다니면서 수학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수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6.25 전쟁이 막바지로 향해가던 시절,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수학이라는 미지의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황폐해져 버린 고국을 뒤로 하고 떠나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었다. 궁핍했던 당시 방정식이나 푸는 게 죄스러웠다는 그의 말에서 당시의 심경을 느낄 수 있다.

1958년 미시간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Characterization of the N-sphere through Decompositions and Related Topics)를 받은 권 교수는 이듬해 잠시 귀국해 3년간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2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간 그는 플로리다주립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1964~1965년에는 저명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당시 고등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이휘소 박사와 같은 학교의 플라즈마연구소에 있던 정근모 박사 등과도 친분을 맺었다. / 강의 중인 권경환 교수

권 교수는 실력 외에도 두 가지 무기를 더 가지고 있었다. 
    유머러스한 언변과 쾌활한 성격이었다. 모나지 않은 성격 탓에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갈 수 있었고, 유려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말솜씨는 그를 호감형으로 만들었다.

미시간주립대학 교수진급 심사에서 꾸준히 승진해 1983년 수학과 학과장 자리에 오른 것도 그의 실력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그의 마음가짐이 바탕이 됐다. 
    권 교수가 학과장 자리에 있었던 10년 동안 미시간주립대학 수학과는 미국 대학의 수학과 분류상 제2 그룹에서 제1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권 교수의 연구 분야는 위상수학 가운데서도 기하위상수학(geometric topology)이다. 
    위상수학은 수학적 공간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으로, 20세기 이후의 현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의 하나다. 
    위상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대상 중 하나가 다양체(manifold)인데, 이는 “국소적으로 유클리드 공간과 동등한 모습을 갖는 수학적 공간”으로 규정되는 대상이며 현대 수학의 여러 핵심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권 교수는 다양체 연구를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연구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한국 양국의 수학 발전에 기여했다.

권 교수의 연구를 이미지로 구성한 결과사진 / 권 교수는 1964년 “Product of Euclidean Spaces Modulo an Arc”(Annals of Mathematics 79-1)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다양체인 유클리드 공간이 다양체가 아닌 두 공간의 곱으로 분해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1965년에 발표한 “Product and Sum Theorems for Whitehead Torsion”(Annals of Mathematics 82-1)에서는 다양체의 본질적 불변량(invariant) 중 하나인 “화이트헤드 토션”이 더하기나 곱하기와 같은 연산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검토했다. 
    이 두 건의 논문은 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적 저널에 실리며,  위상수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연구를 성공시키고 나면 연구 범위를 조정하여 이에 속하는 
    다양체의 위상적 분류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수학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권 교수님은 구분적으로 선형성을 가지는 PL 다양체라는 대상의 분류 연구에 매진하며 여러 제자를 양성했고, 그들 다수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어 
    이 분야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강태 포스텍 수학과 교수)

이렇듯 권 교수의 연구는 당대와 후대의 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발간한 40여 편의 논문은 위상수학이라는 전문 분야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4회의 인용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는 미국수학회(AMS)에서 발간하는 국제적 저널에 15편 이상의 논문을 실었는데, 이 수학 전문지에 논문을 실은 국내 학자가 100명도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학문적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또 1년 동안 지원받기도 힘들다는 미국과학재단(NSF)의 연구비를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무려 18년 연속으로 받으며 세계적 수학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온 건 1990년이었다. 
    권 교수는 수학 교수로서 재직기간의 마지막 10년을 포스텍에 바쳤다.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후진 양성에 힘 써달라는 당시 김호길 포스텍 총장의 권유도 있었지만, 수학을 통해 반드시 나라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

미시간주립대학 수학과의 성장을 이끌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포스텍 수학과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999년 퇴직하면서는 ‘권경환 석좌기금’을 출연하며 후배 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정년을 5개월 여 앞둔 1999년 3월 11일, 그는 학교에서 지급한 연금 1억9000만 원과 사비 1000만 원 등 총 2억 원을 석좌기금으로 기증했다. 
    평생 다른 사람들로부터 계속 도움만 받아오다가 교수생활을 마치는 시점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 연금전액을 석좌기금으로 기증하게 됐다.

강의 중인 권경환 교수사진 / 항상 웃는 모습과 소탈한 성격으로후배 교수와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특히 권 교수가 열정적으로 임했던 건 강의였다. 그의 강의에는 공부는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는 권 교수의 신조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수학처럼 돈도 따르지 않고 실생활과 연관이 없는 학문을 하려면 철저한 노력과 원칙을 강조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어느 곳에서든 ‘공평무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행동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고, 또 누구든 공평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1남 3녀를 둔 그는 방이 3개인 집에서 살 때 아버지 방에만 에어컨이 설치돼 있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자식들의 이의를 받아들여 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에어컨을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의 공평무사 정신이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진짜 훌륭한 수학자들은 학문에만 몰입합니다. 
    우겨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권경환 교수님은 수학자의 본을 보여주신 학자 중의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혁 서울대 수학과 명예교수)    
    수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고 발휘할 줄 알았던 학자, 권경환. 위상수학은 물론, 한때 수학의 불모지라 불렸던 한국 수학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정부는 그에게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의 명예를 헌정했다.  
    진정한 수학자의 모습으로 한국 수학계의 발전을 갈망했던 그는 푸근한 웃음으로 제자들을 품어주는 수학계 큰 스승으로 지금도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