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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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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제어 국제학계의 리더이자 대한민국 IT 벤처업계의 큰 스승

자동제어 분야 연구개발 선도한 산학 겸비 공학자 /
학문적 권위와 기술벤처 육성으로 가치창출 극대화 권욱현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45
    자동제어 분야 연구개발 선도한 산학 겸비 공학자 / 학문적 권위와 기술벤처 육성으로 가치창출 극대화 - 권욱현 / 자동제어 국제학계의 리더이자 대한민국 IT 벤처업계의 큰 스승

- 학력 196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학사(전기공학), 1972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전기공학), 1976 미국 브라운대학 공학박사(제어공학)    
    - 경력 1977 ~ 2008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1991 ~ 2008 과학재단-서울대 제어계측신기술연구센터 초대 소장, 2001 제3세계과학학술원(TWAS) 펠로우, 2002 ~ 2006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2005 ~ 2008 국제자동제어연맹(IFAC) 회장, 2010 ~ 2014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 포상 1997 대한민국학술원상, 2000 제1회 매일경제신문 신지식인상 대상, 2007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襟懷開霽月(금회개제월) 
    (스승님의) 깊은 마음은 갠 하늘에 맑은 달보다 깨끗하고 談笑止狂瀾(담소지광란) 말씀과 웃음이 거센 물결 그치게 하네
    (이이 : ‘퇴계 선생께 바친 율시’ / 정년기념문집에서 권오규 교수 ‘인사말’ 중)    
    학문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누구보다 뜨거웠던 사람. 권욱현 교수는 늘 온화한 표정으로 제자들을 대하며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데 몰두했던 큰 스승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태산과 같은 역할을 하며 교육과 연구에 매진했던 권 교수. 그는 지금도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1962년 경기고등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후, 같은 해 3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수재 소리를 들으며 학교를 다녔던 그의 꿈은 서울대 교수였다. 
    공부 말고는 아무런 특기나 재주가 없었던 그의 유일한 소원이기도 했다.      
    1966년 대학 학부를 차석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 유급조교로 발령받아 생활하다. 미국 브라운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유급 조교로 활동한 경력과 유학을 다녀온 경험은 그의 교수 임용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권 박사는 1977년 조교수로 임용되며 본격적으로 서울대와의 인연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전기공학과로 부임한 그는 다음 해 공대 공업교육과가 없어지면서 신설된 제어계측공학과(당시 계측제어공학과)로 소속을 변경하게 된다. 
    권욱현 사단이라고 불리며 ‘창업사관학교’ 역할을 한 ‘제어정보연구실’의 시작점이었다.

제어계측공학과에서 시작한 마이크로 로봇 사진
    우수한 학생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를 하는 것만큼 그에게 즐거운 일은 없었다.
    권 교수는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동료 교수들과 학과의 기틀을 잡아 나갔다. 
    실험교육을 강화하고 로봇경진대회를 주최하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커리큘럼을 도입해 학과를 유명학과로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신설된 학과였음에도 서울대에서 입학 커트라인이 최고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다. 
    한 번 세운 목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달성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연구실험실의 학문적 역량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권 교수는 연구주제별로 팀장-팀원 체제를 도입해 자율성과 팀웍을 강조했고, 그 결과 그가 이끌었던 제어계측신기술연구센터는 조직적이고 협동적인 연구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었다.     
    5명 내외의 팀이 꾸려지면, 그 팀의 팀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요. 선후배로 구성된 팀의 친밀도와 단결력이 강해질수록 성과도 크지요.

그는 실험실 연구를 창업으로 연결시켰다. 
    스탠포드대학 방문교수로 갔을 때 목격한 실리콘밸리의 활성화된 모습이 계기가 됐다. 권 박사는 당시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이 대기업 대신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자들에게 실험실 벤처 창업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그는 창업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실용교육까지 받으면 기회가 더 많아집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머리 좋은 학생들에게는 실용교육을 안 시키거든요. 그런데 저는 자꾸 뭘 만들도록 시켰어요. 독자적인 개발이 가능하도록 말이죠.

그는 다른 교수들과는 다르게 많은 대학원생들이 졸업 후 기술벤처를 창업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지원했다. 
    그가 배출한 박사 55명을 포함한 석박사 130명 가운데 무려 34명이 벤처기업 창업에 참여했는데, 이들이 세운 벤처기업만 12개에 달한다. 2017년 기준으로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액은 무려 2조 원을 상회했다. 신산업 개척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한 셈이었다.
    
    휴맥스(변대규), 우리기술(김덕우, 후임 노선봉), 파인디지털(김용훈), 바텍(임성훈), 토필드(이용철), 파이오링크(조영철), 슈프리마(이재원) 등이 그가 배출한 선도적 벤처기업가들이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 범용 패키지, 샘틀 사진 / 
    제자들 못지않게 그 역시 기술 사업화에 관심이 많았다. 
    권 교수가 개발했던 ‘셈툴’은 셈하다의 셈과 도구의 툴을 결합한 “셈도구”의 뜻을 지닌 국산 과학기술 계산 패키지로, 당시 선진국의 소프트웨어 대항마로 추진되며 주목받았다.     
    1990년 개발에 착수해 1992년 첫 시제품을, 2000년부터는 상업용 제품 출시까지 갔지만 그의 퇴임과 동시에 사업화가 무산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2009년 제자인 김광진 사장이 셈웨어를 설립, 스승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교육용으로 여러 대학에서 사용 중이다.

선도적인 기술벤처 육성으로 가치창출을 극대화하며 국가에 보탬이 된 그의 또 다른 업적은 학문적 수월성에서 찾을 수 있다. 
    권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에서부터 다룬 연구를 발전시켜, 긴 구간에서 한꺼번에 계산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짧은 구간에서 반복하여 제어를 계산하는 “이동구간제어(Receding Horizon Control)” 이론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적용이 가능하게끔 일반화시켰다.

그의 이론은 이후 모델예측제어(Model Predictive Control)라는 이름으로 활용되며 기계장치, 전기전자, 화공플랜트, 항공 등의 자동화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는 제자와 함께 자신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영문저서 Receding Horizon Control (Springer, 2005)과 Stabilizing and Optimizing Control for Time-Delay Systems: Including Model Predictive Controls (Springer, 2018)를 출간하며 새로운 지식정보를 공유하는 데도 앞장섰다.

제어로봇시스템학회 창립 총회 사진, 제오로봇 시스템학회 사무실 개소식 사진 / 
    제어로봇시스템학회(당시 제어자동화시스템공학회)를 만든 것도 그였다. 권 교수의 판단으로는 제어공학의 경우 학제적인 면이 강해서 전기와 전자, 기계, 화학, 항공 등 다양한 분야가 함께 학술활동을 해야만 기술발전이 용이했다. 그의 생각은 주효했고, 이후 학회의 활성화를 통해 자동화 시스템 분야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자동제어 분야에서 학문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국제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 나갔다.     
    그는 20권의 학술저서와 SCI급 국제저널 논문 148편을 발표했고 Google Scholar 인용도 13,000회를 기록했으며, 이중에는 1,600회가 넘는 연구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DIGIST 발전기금 1억 원 전달식에서 권욱현 교수(왼쪽에서 두번 째)사진 / 
    자동제어 분야에 관해 국제적 연구성과를 거두고 실험실 연구를 기술벤처로 전환시켜 학문적, 산업적 가치를 크게 높였던 그의 공헌 덕분에 
    권 교수는 대한민국학술원상,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과 함께 매일경제신문 신지식인상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기 위해 부상으로 받은 모든 상금과 제자들이 함께 모은 12억 원을 기부하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도 했다.

논문만을 중시하는 기존 대학의 가치관을 깨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창업의 열정을 전달했던 미래 지향적 교수.
    국내 벤처기업의 태동을 이끈 그의 가르침 덕분에 권욱현 사단의 기업들은 상장사로서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벤처기업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다.
    과학기술유공자의 이름으로 실험실을 넘어 ‘창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 그의 삶은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