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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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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러스연구의 아버지, 반짝이는 별로 인류를 구하다 - ⑧ 이호왕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⑧ 병원체 발견에서 진단법, 백신까지 개발한 세계 최초 과학자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8 병원체 발견에서 진단법, 백신까지 개발한 세계 최초 과학자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 바이러스연구의 아버지, 반짝이는 별로 인류를 구하다 - 유행성 출혈열 병원체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 발견한 평생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한 교육자이자 과학자

따사로움으로 가득 찬 늦봄. 노랑, 초록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산과 들은 몸과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밖으로, 밖으로 불러낸다. 하지만 산이나 풀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특히 반세기 전, ‘괴질’로 불렸던 ‘유행성 출혈열’은 전 세계 수많은 군인과 농민을 위협했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국제 과학기술계 최약소국에서 창궐하는 전염병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끝내 봄·가을 들판을 안전한 곳으로 만든 한 과학자가 있다. 바로 한국 바이러스 연구의 아버지, 이호왕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다.

이호왕 박사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흥이다. 모친이 의학공부를 권유해 함흥의과대학에 진학했고,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한계를 느껴 월남하며 서울대 본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월남 직후 발발한 한국전쟁. 전쟁 중 서울은 전염병 전시장이었다. 티푸스, 장티푸스, 말라리아, 콜레라, 매독, 임질, 그리고 유행성 출혈열. 유행성 출혈열은 고열과 심한 복통이 오고 얼굴·목·눈의 혈관이 터져 반점이 생기며 나중엔 신장이 파괴된다. 한국전쟁 시 UN군 3200여 명이 감염돼 수백 명이 사망했고, 북한과 중공군 역시 수천 명이 발병해 서로 상대방의 ‘세균전’을 의심할 정도였다.

병원 실습 중 전염병 환자들을 목도한 이호왕 박사는 졸업 후 바로 병원에 들어가는 것보다 전염병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 미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 후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연구조교로 발령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유학의 길이 열렸다. 일명 ‘미네소타 프로젝트(1955~1962)’. 한국은 1953년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하며 국내 과학자들의 미국 연수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미네소타대학(University of Minnesota)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대 의대, 공대, 자연대, 농대 교수 226명을 초청해 짧게는 4개월, 평균 2년을 교육시켰다.

이호왕 박사는 국가에서 보내준 유학이라는 생각에 무조건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의 재능과 성실함을 눈여겨 본 교수 중 하나의 추천으로 미국에 남아 박사과정까지 밟게 된다. 미국에 유학 온 지 4년 3개월 뒤 그는 미국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두 번째 한국인이 됐다. 일본뇌염바이러스의 면역기전을 규명한 학위논문은 당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면역학회지’에 게재됐다.

1959년 말, 귀국한 이호왕 박사는 서울대 의대에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학생들과 함께 미군이 쓰던 건물을 직접 청소하고 미네소타 대학의 교과과정을 그대로 가져와 강의와 실습을 진행했다. 연구를 지속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으나 국내에는 연구비가 많지 않았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은 끝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외국의 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엑스트라뮤랄 프로그램(extramural program)을 발견한다. 3명 선발에 200명이 넘는 사람이 신청할 만큼 경쟁률이 셌는데, 일본뇌염에 대한 연구를 하겠다고 계획서를 내고 석·박사학위 논문을 첨부해서 선정됐다.

당시 일본뇌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였다. 1년에 사망자만 3,000명에 달했다. 뇌염은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는데 병이 걸렸다가 낫는다고 해도 뇌에 후유증이 남는다. 이 박사는 1965년부터 5년간 일본뇌염 연구에 매달려 많은 것을 밝혀냈지만 일본에서 먼저 백신을 개발하며 해당 연구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미국의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아야 했다.

고심 끝에 그가 선택한 다음 주제가 바로 ‘유행성 출혈열’이다. 미국은 1952년부터 1967년까지 15년 동안,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의학자 2명을 포함한 230명의 연구진과 4천만 달러를 투자해 유행성 출혈열을 연구했으나 병원체를 찾지 못해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1969년 출혈열의 병원체 규명을 위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해 미육군의학연구개발사령부 극동사령부에 제출했고, 5개월 후 “1970년부터 3년간 4만 달러의 연구비를 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것이 또 다른 운명의 시작이었다.

유행성 출혈열 연구를 시작하고 6년 동안은 위기와 실패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군부대 주변에서 들쥐를 사냥하다 무장간첩으로 오인 받아 경고사격을 받기도 했고, 감염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연구원들도 있었다. 들쥐의 내장을 말 그대로 쥐 잡듯 뒤졌지만 항원을 찾지 못했고, 당시로는 첨단기법인 전기영동법과 한천면역확산법을 동원해 환자의 혈액을 조사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다시 면역형광항체법과 면역전자현미경법이라는 첨단기법을 동원해 병원체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 역시 실패였다. 1975년 미육군의학연구개발사령부에서 1년 후 극동지구를 폐쇄하니 더 이상 연구비를 지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됐다.

낙담해 있던 그에게 NIH에서 출혈열 연구를 하다 은퇴한 젤리슨(W. F. Jellison) 박사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담은 책자와 편지를 소포로 보내왔다. 들쥐의 폐에 기생하는 곰팡이 독소를 살펴보라는 조언이 담겨 있었다. 그의 조언으로 이 박사는 폐 부위를 조사했고, 마침내 등줄쥐 폐조직에서 혈청과 반응해 밝게 빛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연구를 하니 주변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실상은 아주 열악했어요. 전기며 수돗물이 끊기기 일쑤였고, 연구원은 나를 포함해 5명뿐이었지요. 그런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실패하면 다시 창의적인 방법을 생각해서 시도했지요. 1975년 10월에 들쥐의 내장 샘플에 환자의 항체가 있는 혈청을 반응시키고 현미경을 들여다봤더니 밤하늘의 은하수 같이 노란 빛이 나타났어요. 새로운 별을 찾아낸 거죠. 흥분을 누르고 6개월 동안 침착하게 수십 번을 반복해 확인했는데 그때마다 현미경 안에 별이 반짝였습니다.”

1976년 4월, 이호왕 박사가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열악한 나라에서, 미국 교수 연봉만큼의 연구비로, 그것도 박사학위 받고 10년 밖에 안 된 사람이 50년 묵은 미제(謎題)를 풀었다고 하니 의심부터 돌아왔다. 당장 미국 중령이 서울에 와서 일주일 간 머물며 연구과정과 결과를 검토했다.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중령은 본국으로 돌아간 후 미국 육군 병원 연구본부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다.

이 박사가 강연장에 도착하니 200명이 넘는 석학들이 빽빽하게 앉아있었다. 발표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한참을 넋을 잃고 앉아있던 강연장에서 잠시 후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코넬대(Cornell University), 예일대(Yale University), CDC(미국 질병통제센터) 등에서도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여러 곳에서 환자혈청과 일반인혈청을 섞어놓고 맹검시험(blind test)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가 해낸 것이었다.

미국 유수의 저널에 그의 연구가 대서 특필됐고,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 중 처음으로 ‘미 육군 최고시민 공로훈장’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박사는 한국에 남았다. 그가 있는 곳이 유행성 출혈열을 선도하는 중심 연구지가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1981년에는 서울 마포구 한 건물 지하상가에서 잡은 집쥐에서 한탄바이러스 친척뻘 되는 서울바이러스도 찾아냈다. 이 같은 그의 성과에 세계보건기구(WHO)는 1982년 이호왕 박사의 연구실을 연구협력센터로 지정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실이 명실상부한 유행성 출혈열 연구의 메카가 된 것이다. 1991년엔 녹십자와의 공동 연구로 개발한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 ‘한타 박스’가 나왔다. 지금도 휴전선 일대에 근무하는 군인과 주민은 이 주사를 맞는다.

바이러스의 병원체와 진단법, 백신까지 모두 개발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이호왕 박사. 그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고려대는 경기 동두천에 ‘이호왕박사기념관’을 설립했으며, 정부는 ‘과학기술유공자’라는 명예를 헌정했다. 91세의 노령에도 불구, 세계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그의 열정에 후학들은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은 진심을 울린다. “과학자에게 우연이란 노력할 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엄청난 노력을 하면 반드시 귀인이 나타나요. 제 인생이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