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비 75만 마리 채집, 248종의 한국산 나비에 고유 이름 명명 일제강점기 민족 자긍심 고취시킨 불꽃같은 삶을 산 나비연구가
故 석주명(石宙明)
前 국립과학박물관 동물학부장
(1908~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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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 1929
일본 카고시마고등농업학교 농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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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경성제대 부설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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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나비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생물학자
석주명 선생은 우리나라 나비연구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적인 생물학자다. 1930년대 초부터 1950년까지 20여 년간 전국적인 채집여행을 다니며 무려 75만 마리에 이르는 나비를 채집해 통계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기존의 잘못된 연구들을 바로잡았다. 그는 채집한 표본의 앞날개 길이, 뱀눈무늬의 수와 위치를 측정하여 개체변이의 정규분포 곡선을 작성, 변이 범위에 포함된 기존 학명들을 동종이명(同種異名, synonym)으로 판명해 학계에서 퇴출시켰다. 이는 고등보통학교 박물교사인 석주명 선생이 일본 제국대학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의 잘못된 연구를 지적하고 바로잡음으로써 식민지시기에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크게 높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석주명 선생은 일본과 조선의 전문 학술지에 12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그의 연구를 통해 한국산 나비의 동종이명 844개가 제거되었는데, 이는 전체 동종이명의 90%가 넘는 수치였다. 통계학적 지식을 생물분류학에 본격적으로 적용시킨 논의는 서구 학계에서도 193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석주명 선생의 연구방법은 단순하기는 했지만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한국산 나비에 대한 분류학을 정립한 ‘나비박사’
그의 노력으로 한국산 나비는 248종으로 정리되었고, 우리나라 나비에 대한 분류학은 현대적인 과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영국의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회’(The Royal Asiatic Society-Korea Branch: RASKB)에서는 석주명 선생에게 한국산 나비에 대한 연구를 총정리한 논문 집필을 요청했고, 이는 1940년 영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1940). 식민시기에 한국인 학자가 과학 분야에서 영문 연구서를 펴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석주명 선생은 ‘나비박사’라는 별명과 함께 우리 민족의 과학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과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석주명 선생은 자신의 연구대상을 철저하게 ‘한국’의 나비로 한정했다. 이는 생물학은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향토색이 짙어서 ‘한국학적 생물학’이 가능하다는 그의 독특한 과학관에 따른 결과였다. 그는 한국의 생물을 대상으로 한국인 연구자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론을 사용하여 한국 생물의 독특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 한국학적 생물학(조선적 생물학)이라고 여겨 스스로를 ‘조선적 생물학자’라고 칭했다. 왕조실록이나 개인 문집 등 조선의 고전에서 나비와 관련된 기사나 인물을 발굴, 소개하는 등 나비 연구를 한국학과 연계하기도 했다. 1930년대 조선 지식인의 ‘조선학 운동’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나비 연구를 ‘조선학’으로 해석하고 ‘조선적 생물학’으로 민족적 가치를 부여했다.
248종의 한국 나비에 각시멧노랑나비, 수풀알락팔랑나비 등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붙여
분류학 연구를 일단락 지은 석주명 선생은 자신의 채집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산 나비 각각의 종에 대한 분포연구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채집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각 종의 나비마다 서식지를 파악해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을 구했다. 그는 분포연구와 변이연구를 바탕으로 형태에만 치중하는 분류학에서 벗어나 유연관계를 고려하여 계통을 세우고 환경과 분포의 관계까지 밝혀내는 곤충학을 추구하려 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73년 유고로 간행된 그의 분포연구는 현재에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산 접류 분포도, 보진재, 1973) 또한 그는 우리말과 역사에 대한 열의와 지식을 바탕으로 나비의 우리말 이름 짓기에 앞장섰다. 해방이후 그가 직접 만들거나 정리한 한국산 나비 248종의 우리말 이름은 1947년 조선생물학회를 통해 최종 확정되었다. 그가 만든 나비 이름에는 각시멧노랑나비, 수풀알락팔랑나비 등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많았고, 이는 우리말에 대한 그의 감각과 재능을 잘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나비 이름의 대부분은 그가 지은 것이다. 석주명 선생은 제주도 연구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나비채집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의 방언이나 독특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다가, 제주도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제주도 방언집’, ‘제주도 문헌집’을 비롯하여 6권에 이르는 제주도 총서를 집필했다. 이중 특히 ‘제주도 방언집’은 국어학자들에게 매우 높게 평가받았으며 석주명 선생은 제주도 방언과 문화에 대한 연구로 ‘제주도학’(濟州道學)이라는 지역연구를 이끈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