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군 코호몰로지에 대한 선도적 연구로 대수적 K-이론의 주춧돌 마련
교육 및 교류를 통해 한국 현대수학의 인재양성과 연구 발전에 일조
故 임덕상(林德相)
前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교수 (1928~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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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57
미국 인디애나대학 대학원 이학박사(대수기하학)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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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1960
미국 컬럼비아대학 박사후연구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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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982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수학과 교수,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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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1975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본부평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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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81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장학위원
임덕상 교수는 재미 한국인 수학자로서 군 코호몰로지 연구, 변형이론 연구를 통해 대수기하학 발전에 기여했고,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와 필라델피아 교민회 활동을 통해 한인 과학기술계와 지역사회 교포들의 교류와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유한군 코호몰로지의 세계적, 선구적 연구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46년 서울대에 입학하여 1954년에 졸업했고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이화여고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1955년 인디애나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고 1957년에 유한군의 코호몰로지 이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도교수는 George Whaples으로 학위논문 제목은 “An Axiomatic Approach to Cohomology Theory of Finite Groups”였다.
이후 1965년 펜실베니아대학 교수로 갈 때까지 두 군데 대학에서 강의하며 연구 경력을 쌓았다. 1957년부터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과 조교수로 있으면서 대수기하학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브랜다이스(Brandeis)대학 수학과 학과장이었던 골드먼(Oscar Goldman) 교수는 임덕상 교수의 연구 능력을 일찍 알아차리고 1960년 그를 영입했다. 이후 골드먼 교수는 자신이 옮겨간 펜실베니아대학 수학과로 임덕상 교수를 초빙했다.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임덕상 교수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수학과 대학원과 학부의 학과장을 차례로 맡았다. 그는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선출직인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Transactions의 편집인과 Annals of Algebra 편집위원을 지냈다.
임덕상 교수의 주요 업적은 첫째, 유한군 위에 정의된 모듈의 분류이론을 만든 것이다. 1959년 그는 카르탕과 아일렌베르크(Cartan-Eilenberg)가 제기한 호몰로지 대수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파이를 유한군이라 하면 정수군환 Z(파이)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모듈 중에서도 특히 사영차원 (projective dimension)이 유한일 조건과 이 모듈의 코호몰로지가 자명할 조건이 서로 필요충분 관계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 이 논문의 중심 정리다. 이 연구 결과는 “대수적 K이론”으로 정립되는 연구 분야의 토대가 되었고, 그를 군 코호몰로지 이론의 초기 선구자 중 하나로 만들었다.
변형이론 연구로 대수기하학 발전에 기여
그의 둘째 주요 업적은 독창적인 공리론적 접근법을 이용하여 대수기하학의 한 분야인 변형이론(deformation theory)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쿠라니시(Masatake Kuranishi)에 의해 시작된 변형이론에 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1972년에 세미나 노트 SGA 7 I(Groupes de Monodromie en Geometrie Algebrique)에 발표했다. 이 시리즈에는 1966년 필즈상 수상자 그로텐딕(Alexander Grothendiek) 등이 참여했고, Springer-Verlag에서 출판되어 널리 인용되었다.
연구자 교류와 인재양성으로 한국 현대수학 발전에 일조
임덕상 교수는 연구 외에 재미 과학기술자들의 조직과 지역 한인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1971년 창립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의 초대 본부평의원(1972-1975)과 초대 장학위원(1978-1981)으로 활동했다. 또한 제4대 필라델피아 한인회장, 서재필 기념비 건립위원장을 맡아 지역 한인사회에 봉사했다.
그는 또한 한국의 수학 인재양성에도 공헌했다. AID 차관계획에 의해 서울대학교에서는 1975년부터 5년간 재미수학자들이 초빙되어 강의를 담당했다. 그도 이 프로그램에 의해 1976-1977년에 대수기하학을 강의하는 등 한국 현대수학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