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기상예보 기술 확보를 위한 중앙관상대의 기상시스템 현대화
한국기상학회와 <한국기상학회지> 창설로 한국 기상학의 제도화 마련
故 국채표(鞠埰表)
前 중앙관상대 대장
(1907~1969)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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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931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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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58
미국 시카고대학 기상학과 졸업, 대학원 이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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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1960
미국 위스콘신대학 기상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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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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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56
캘리포니아 미군 제6군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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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표 대장은 한국의 기상예보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한국기상학회의 발족과 한국기상학회지 창간으로 한국기상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선구적인 기상학자다.
기상학 분야를 홀로 개척하고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취득
그는 일제강점기 연희전문학교 수물과와 교토제국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15년간 재직했다. 교사로 있는 동안 신문과 잡지에 과학 관련 글을 꾸준히 게재하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과학정보를 전달했다. 주로 계절과 절기(節氣)와 관련된 자연변화나 대기 현상, 기상 현상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과학대중화에 앞장섰다.
그는 해방 후 교직에서 물러나 국립중앙관상대로 자리를 옮기며 기상학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이 기관의 대장은 한국 최초의 이학박사이자 연희전문학교의 스승이었던 이원철이 맡고 있었고, 그는 부대장으로 발탁되었다. 부대장이 된 그는 1946년 ‘고층권 기상연구’의 책임자로서 일제가 5킬로미터 상공까지만 올렸던 기상관측 기구를 23킬로미터 상공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거둔 세계적인 성과이자 미래의 한국 항공기술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소개했다.
그는 관상대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면 기상학을 전문적으로 배워야 할 필요를 느껴 세계 기상학을 이끌고 있던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학문에 입문하기 위해 1949년 시카고대학 기상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수료하고,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미군 제6군단에서 강사로 2년간 근무했다. 그후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미 해군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On the prediction of three-day hurricane motion“이라는 성과를 발표했고 1958년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하여 인정받았다. 이 연구는 미연방 기상국에서 인정하는 기상연구의 주요 성과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뛰어났다. 그는 위스콘신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연구를 이어갔으나(농업기상학 전공) 중앙관상대 책임자를 맡기 위해 서둘러 귀국하는 바람에 박사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1961년 귀국하자마자 박정희 정부는 그를 이원철의 후임으로 중앙관상대 대장에 임명했다. 대장이 된 그는 기상예측에 필요한 기자재를 정부에 요청했고, 미국에서 배운 기상학에 바탕하여 새로운 방법을 국내 기상예보 시스템에 적용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전화를 통해 일기예보를 자동응답으로 전달받는 <자동일기예보기> 설치, 고층대기권의 기상 현상을 관측할 <고층기상관측소> 설립, 해외 기상도를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기상 팩시밀리> 구입 등을 추진하여 한국의 기상시스템 현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
정확한 태풍 예보를 위한 ‘국(鞠)의 방법(Kook’s Method)’ 창안
그는 일본의 교토대학에 “한국 및 한국 부근에 내습할 우려가 있는 태풍의 운동 및 중심시도의 통계적 예보법“(1964)이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기상학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는 미국 시카고대학 시절부터 연구해온 내용을 발전시켜 한국에 적용한 것으로 태풍진로 예상법을 제안한 획기적인 논문이었다. 그가 논문에서 제시한 ‘국(鞠)의 방법(Kook’s Method)’은 국제적으로 알려졌고, 당시 기상예보에도 활용되었다.
기상학 후대들이 활동할 학술적 기반을 앞장서서 마련
그는 1963년 한국기상학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낙후된 한국의 기상학 발전을 위해서는 기상학을 연구하는 학자 간의 교류 및 후진 양성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로써 그는 중앙관상대의 기술연구원들과 기상학 관련 대학 교수들과 함께 한국기상학회를 창설하고 지금은 세계적인 학술지가 된 한국기상학회지를 1965년 창간하며 한국 기상학의 제도화에 앞장섰다.
국채표 대장은 한국의 현대적 기상예보 기술과 기상학의 제도적 발전을 이끈 과학자였다. 그는 낙후된 한국의 중앙관상대를 첨단시설을 갖춘 현대적 기관으로 재정비하고, 한국기상학회를 창립하여 기상학의 학문적 기틀을 닦았다. 그가 기상학계에 남긴 이러한 유산은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 한국의 기상학 및 기상예보의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