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부터 에쿠스까지 34종의 자동차 모델 자체개발
현대자동차의 R&D를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기술개발 역사의 산증인
이충구(李忠九)
前 현대자동차 사장 (1945~)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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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교육과(자동차공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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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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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 1999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장,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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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2002
현대자동차 통합연구개발본부장,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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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2016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원 지능형자동차플랫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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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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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대한민국 100대 기술주역 선정(한국공학한림원)
자동차산업의 압축성장에 중추적 역할한 기술개발의 마에스트로
이충구 사장은 한국 자동차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기술개발의 마에스트로다.
1945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부터 자동차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서울대 공대에서 자동차공학을 배웠고 졸업 후 군대에서는 수송병과의 정비담당 장교로 근무했으며, 뒤이어 1969년 ROTC 공채 1기로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그가 자동차 기술개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에서 자동차 기술개발을 시작할 때 초기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이때부터 그는 온갖 어려움 속에 40년 동안 자동차 기술개발에 정진하며 수많은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자동차들은 그에 의해 잉태되고 진화해 나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초 고유모델 포니 개발에의 참여와 지침서 ‘이대리 노트’ 작성
그의 주요 성과의 하나는 한국 최초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Pony)의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그는 1974년 프로젝트 기술팀의 일원으로 설계와 스타일링, 프로토타입 제작을 맡은 이탈디자인(Ital Design)이 있는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10개월 동안 선진 기술에 대한 고된 학습이 이루어졌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외국 전문가들의 도움 속에 상세설계를 비롯한 실제 생산기술 확보에 참여했고 그가 이탈리아에서 기록한 일명 ‘이대리 노트’는 기술 지침서로 아주 요긴하게 참조되었다. 드디어 포니가 1976년 인기리에 생산되는 가운데 국민차로 등극했고 한국은 세계 9번째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다.
다음으로 소형차를 개선하는 X카 프로젝트와 중형차를 개발하는 Y카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1978년부터 현대자동차에서는 승용차 기술을 증진하고 그 국산화를 확대해 나가는 추격형 기술개발사업(개발프로세스의 압축 학습과 R&D체계의 구축)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그 중심에 설계 책임자 이충구가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마북리연구소 설립(1981)을 필두로 자동차의 핵심 기술에 대한 자립이 본격적으로 모색되었고, 그에 동반하여 부품업체들의 설립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한국에서 주도해서 개발한 전륜구동방식의 소형차 포니엑셀과 중형차 스텔라가 동시에 출시되었고 이중 스텔라는 88올림픽 공식 행사차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유모델 풀라인업 구축 및 핵심기술의 독자개발 추진 성공
연구소 소장인 그의 관할하에 국내 최초로 1991년에 소형용 알파엔진, 1995년에는 중형용 베타엔진이 개발되었다. 구형의 기화기식 엔진조차 설계한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는 최신형 전자제어분사식 엔진 개발에 나섰다. 이를 발전시켜 세계 자동차업체들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중형용 엔진도 새롭게 개발했다. 미국으로의 본격적인 승용차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성능, 연비, 소음, 내구성, 경량화, 배기가스 등 다양한 조건을 두루 만족시켜야 했다. 이로써 고유모델에 알파엔진을 탑재한 엑센트, 독자 새시 플랫폼 기술과 베타엔진을 장착한 아반떼가 출시되며 자동차 기술독립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주도로 현대자동차에서는 40년 사이에 무려 34종의 승용차 및 다수의 상용차가 개발되었다. 차종이 소형에서 대형으로 다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모방을 넘어 자립의 단계로 올라섰다. 이 중에서도 포니(1976), 스텔라(1983), 포니엑셀(1985), 소나타(1985), 그랜저(1986), 엑센트(1994), 아반테(1995), 에쿠스(1999), 산타페(2000)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차종으로 그 상당수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널리 수출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가장 낙후되었던 자동차분야에서 짧은 기간에 세계 5위의 나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그는 1978년 산업포장을 받았다. 포니 개발의 공로로 현대자동차 직원 중에서는 가장 큰 상이 주어졌다. 1994년에는 미국에 본격적으로 수출된 엑센트 개발의 성과를 높이 평가받아 3.1문화상(기술부문)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따라서 이충구 사장은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궤적을 창출해 그 수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지도적 엔지니어다. 그는 “항상 솔루션은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언제나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현실의 기술문제를 맞서서 해결해 나갔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 자동차 기술개발의 경로를 아주 효과적으로 디자인해 나간 전방위적 혁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