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백편의 논문을 쓰며 평생 연구자로 살아간 세계적인 축산학자
국내외 축산 관련 학회의 대표로서 한국 축산학계의 발전을 견인
故 한인규(韓仁圭)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 (1934~2019)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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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956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 농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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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58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물사양학 농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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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2
미국 유타대학 대학원 영양생화학 이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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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1965
미국 코넬대학 대학원 영양학 이학박사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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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5
아세아태평양축산학회(AAAP)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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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998
세계축산학회(WAAP)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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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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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편의 논문을 쓴 한국 동물영양학 및 사료공학의 창시자
한인규 교수는 동물영양 및 사료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한국 축산학계를 국제적으로 발전시킨 세계적인 축산학자다.
그는 미국 코넬대학에서 영양학으로 이학박사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의 교수로서 평생을 연구 활동에 매진했던 과학자였다. 그는 한국의 가축 사료의 개발과 보급에 기반이 되는 논문을 수백 편 쓴 연구자였고, 서울대 농과대학의 연구와 교육 선진화의 기틀을 세운 교육자였다. 한국축산학회를 비롯한 각종 축산 관련 국내외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산학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농학분야의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 된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한국 축산학계에서 이룩한 그의 독보적인 성과는 670편에 달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한 것이었다. 그는 교수가 된 이후 일차적인 목표를 ‘논문을 많이 쓰는 것’으로 삼았다. 코넬대학의 지도교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여기서 배운 것은 다 잊어도 좋으나 학자는 계속 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라며 당부했고, 그는 매년 10편 이상의 단독 혹은 공동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논문 주제는 한국의 가축에 사용되는 사료의 가치 평가부터 사료 개발과 생산까지 대단히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다. 특히 한국형 사료 성분표 및 사양표준 제정을 위한 기초연구를 지속하면서 그는 한국 동물영양학 및 사료공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의 연구성과는 국제적인 SCI급 학술지에 138편이나 발표될 만큼 양적인 부분만큼이나 질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후학 양성을 위해 선진적 농학의 연구와 교육의 토대를 세운 교육자
그는 35년간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농업교육과 연구제도의 발전에 많은 큰 족적을 남겼다. 대학의 교재가 변변치 않았던 1960년대부터 교재집필에 힘을 기울여 단독 50권을 포함하여 무려 113권의 책을 편찬했다. 농과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해서는 1989년 재단법인 농과대학 연구재단을 창립하고, 1991년에는 대학의 연구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사재를 투입하여 ‘상록농업생명과학연구대상’을 신설했으며, 1992년에는 연구시설의 첨단화를 위해 IBRD 교육차관을 도입해 ‘전국농업과학공동기기센터(NICEM)’를 설치하고 초대 센터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 농학을 선진화된 제도 속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닦아 놓았다.
국내외 축산학계의 중추로 활동한 한국 축산학계의 리더
마지막으로 그는 국내외 축산 관련 학회의 중추적인 학자로 활동하며 한국 축산학계를 국제적으로 발전시킨 리더였다. 국내에서는 한국축산학회, 한국영양학회, 한국영양사료학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국제적으로는 아세아태평양축산학회(AAAP)와 세계축산학회(WAAP)의 회장이 되었다. 특히 AAAP의 창립을 주도하고, 1982년 국내 축산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국제학회인 AAAP학술대회를 서울에서 열도록 했으며, 1988년 『아시아태평양축산학회지』를 창간하여 초대 편집장으로 해당 학술지를 SCI급 저널로 등재시켰다. WAAP의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1998년 WAAP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하는 데 성공하여 한국 축산학계의 국제적 위상을 한층 높였다. 게다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원장으로서 그는 한림원 건물 신축, 중장기발전계획 수립, 국제 한림원과의 교류 등을 추진하며 초창기 발전의 기반을 다졌다.
한인규 교수는 평생 연구활동에 열정을 불사르고, 교육자로서 우수한 후학을 대대적으로 양성하며, 나아가 축산학계의 지평을 국제적으로 확장시킨 진정한 한국 축산학의 대부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학술적 성과는 “일하기 위해 태어난 학자”라고 후학들에게 기억되었으면 한다는 그의 바람을 아로새기는 선명한 자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