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곳간과 미곡종합처리장(RPC)의 개발로 한국의 쌀 관리체계를 현대적으로 변화
한국식품연구원을 설립하여 국내 식품과학의 세계화를 위한 연구기반 마련
故 권태완(權泰完)
한국식품연구원 초대원장 (1932~2017)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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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1961
서울대학교 대학원 화학과 이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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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3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 대학원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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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67
미국 UC Berkeley IMR 연구원, 미국 아이오와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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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1988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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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992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원장,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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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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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쌀 관리시스템, 한국형 미곡종합처리장 개발과 보급
권태완 박사는 한국의 쌀 관리시스템을 개발 보급하고, 한국식품연구원을 국제적인 연구소로 성장시킨 세계적인 식품과학자다.
그는 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KIST의 책임연구원으로 부임하여, 평생 과학활동을 하며 한국 식품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미국의 UC버클리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인 식품연구자로서는 최초로 세계적인 저널 『네이처(nature))』(1966년 4월호)에 논문 “Malonaldehyde from the Autoxidation of Methyl Linolenate”를 게재했다. KIST의 설립과 함께 국가 유치과학자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국가의 쌀 자급 노력에 맞춰 미곡종합처리장(Rice Processing Complex, RPC)을 개발하여 국가 차원의 쌀 관리 체계를 마련했고,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초대원장으로 부임하여 국내 식품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농가의 벼 저장의 혁신을 가져온 개량곳간 개발
그가 식품연구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농가의 벼 저장을 혁신시킨 ‘개량곳간’의 개발이다. 개량곳간은 60가마의 물벼를 한꺼번에 넣어 송풍기를 작동시킴으로써 쉽게 벼를 말려, 다음 해까지 그대로 보관할 수 있는 1.5평짜리 농가시설물이다. 벼 건조에 드는 노동력을 대폭 줄였고, 환풍창과 양곡 입출구의 과학적 설계로 벼의 품질을 보존할 수 있게 했다. 1981년부터 개별 농가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10만동 이상 보급되었고, 이는 세계 최초로 농가 단위에서 곡물의 건조 저장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다음의 대표적 업적은 RPC를 완성한 것이었다. 권태완 박사는 한국에서는 관습적으로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데 그 과정에서 쌀의 좋은 성분이 유실되고 물의 사용량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쌀을 씻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청결미를 생산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여겼다. 이를 위해 수확한 벼의 계량부터, 건조, 가공, 포장까지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RPC를 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는 미국, 일본, 독일의 통풍건조 방식을 한국의 벼에 맞는 형태로 개량하고, 독일과 기술협력을 하여 약 10년간의 연구 끝에 원료 반입, 선별, 계량, 품질검사, 건조, 저장, 도정, 제품 출하, 부산물 처리까지의 작업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한국형 RPC를 개발했다. 1991년 2개의 시험소를 시작으로 현재는 200개가 넘는 정부지원 RPC가 운영되고 있다. RPC의 보급으로 한국의 쌀 관리시스템은 혁신적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한국은 양질의 쌀을 소비하는 국가가 되었다.
식품과학의 국내 허브로서 한국식품연구원 설립과 발전
끝으로 그의 주요 업적은 한국식품개발연구원(현 한국식품연구원)의 설립을 주도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 농업의 선진적 발전을 위해서는 농산물의 가공과 저장기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설립안’을 마련하여 이를 추진했다. 연구원의 초대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연구소의 주요 역할을 한국 식품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 국가 식품산업의 방향 제시, 대학원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 세계적인 과학자들과의 대외 협력 등으로 삼았다. 덕분에 현재 한국식품연구원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는 한국 식품연구의 중추이자 국제적인 연구소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권태완 박사는 과학적인 쌀의 관리 방법을 개발하여 식품연구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준 과학자였다. 1970년대 한국은 통일벼의 개발로 쌀 자급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성장으로 인해 국민의 식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질 좋은 쌀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쌀의 생산량보다 품질이 관건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그가 개발한 개량곳간과 RCP는 전국에 보급되었고, 한국의 쌀 관리 방식은 현대적으로 탈바꿈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양질의 쌀을 자급하는 국가가 되었고, 그의 식품과학 진흥 노력은 한국식품연구원의 성장과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