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레이저 개발과 렌즈 개발로 광기술 국산화 견인
세계 최고 수준의 광학 연구자들을 배출한 존경받는 스승이자 과학행정가
故 이상수(李相洙)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교수 (1925~2010)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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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영국 Imperial College London 물리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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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영국 Imperial College London 물리학 박사 (광학)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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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 1970
원자력원 원자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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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 1991
한국과학원(후에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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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 1993
한국광학회 초대·2대 회장
-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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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sther Hoffman Beller Medal(미국광학회)
원자력연구소장, 한국과학원장 역임하며 안정적 연구환경 조성
이상수 교수는 레이저 개발을 비롯하여 광학과 광기술 분야 발전을 위한 연구와 교육의 기틀을 다졌고 과학행정에도 기여한 바 크다.
그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영국 유학을 계기로 특히 광학과 본격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25년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태어난 그는 함흥상업고등학교를 거쳐 1949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에서 1년 공부했다. 영국 문화원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955년 런던대학 임페리얼 칼리지에 진학했고 1959년에 광학박막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에는 외국에서 물리학, 그것도 실험물리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매우 드물었다. 그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주요 과학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고 광학 교육연구와 더불어 과학행정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귀국 후 그는 1959년에 설립된 원자력연구소에서 원자로 관련 물리학 연구를 사실상 기초부터 조직했다.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TRIGA-II가 1962년 가동을 시작함에 따라 물리학 연구실에서는 그의 지휘 아래 원자로 재료의 중성자 흡수단면적 측정 연구, 열중성자회절 및 산란 연구, 핵분광학 연구 등의 연구가 수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1967년부터는 원자력 연구소장, 1970년부터는 원자력청장의 소임을 맡아 TRIGA-II 출력 증강, TRIGA-III 수주 및 건설 등을 주관하면서 한국 원자력 연구의 기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최초의 레이저 개발로 레이저 연구와 산업의 초석 마련
1964년부터 그는 원자력연구소에서 레이저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되기 전까지 이 연구소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국내 유일의 현대적 과학기술 연구소였다. 따라서 연구는 원자력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레이저 연구도 그 중 하나였다. 1960년에 개발된 레이저는 금속절단, 미세가공, 거리측정 등 다양한 활용도 때문에 세계의 과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정보, 장비, 연구비 등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이었지만 그의 연구팀은 1967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헬륨-네온 레이저 빔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이후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어질 다양한 고성능 레이저 개발의 신호탄이 되었다.
레이저를 넘어서는 광학 연구가 본격 이루어진 것은 그가 신설 한국과학원(후에 한국과학기술원으로 개편)으로 옮기면서부터였다. 한국과학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연계된 국내 최초의 이공계 전문대학원이었다. 그는 초대 원장으로서 우수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 병역 혜택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이 가능했다. 원장의 소임을 마친 후에는 교수로서 1991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연구와 교육에 몰두했다.
그의 연구는 파동광학, 레이저광학, 기하광학, 광정보처리 및 광통신, 비선형 광학, 광산란 및 분광학 등 광학 전반에 걸쳐 있다. 대표적으로 금속박막과 유기체박막으로 구성된 고율 반사경과 간섭계 연구, 카메라와 복사기를 위한 렌즈 개발 연구, 반도체 생산을 위한 리소그래피용 광학시스템 개발 연구, 광섬유를 통한 광학상의 전송 특성에 대한 연구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기초연구에 기반하면서도 광학 기기와 부품 개발, 광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로 응용연구 성격을 가진다. 특히 1980년대 한국의 광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1989년에는 광학의 산업적 연구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전기전자, 화학, 기계 등 관련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한국광학회의 창립을 주도했다. 1999년 레이저 및 광전자 환태평양 국제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때 국내 광산업 기업들의 제품전시회를 병행 개최한 것도 산학협력을 중시하는 그의 지론에 바탕한 것이었다.
수많은 광학 연구자들의 배출로 세계적인 광학 연구집단 형성
기초연구 못지않게 인류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응용연구를 강조한 그의 연구 정신은 그가 길러낸 107명의 석사와 48명의 박사들에게 이어졌다. 이들은 대학, 기업, 공공연구소 등으로 퍼져나가 스승 이상수 박사와 함께 한국의 광산업 발전을 이끌었고 광학 연구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연구, 교육, 과학행정에서 그의 헌신과 공로를 정부와 국내외 학술단체에서 인정받았다. 그는 1979년에 국민훈장 모란장, 1982년에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과학상, 2000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국제적으로는 1975년에 미국광학회 펠로우로 선출되었고 2007년에는 미국광학회의 Esther Hoffman Beller Medal을 받았다. 또한 2014년부터는 미국광학회와 한국광학회가 그의 업적을 기려 ‘이상수 상’을 공동 제정하고 격년으로 광학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고 있다.
신명 이상수 교수는 광학 연구자, 교육자, 그리고 과학행정 및 조직가로서의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 불모지나 다름없던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연구가 산업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잘 보여준 산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