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자로 설계와 핵연료 국산화로 원자력 기술자립 실현
원자력 정책과 사업을 주도하여 국내 원자력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견인
故 한필순(韓弼淳)
前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1933~2015)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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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 1957
공군사관학교 졸업(레이더 정비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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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 1960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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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1969
미국 일리노이대학 이학석사,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이학박사(물리학)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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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1982
국방과학연구소 레이저 및 야시장비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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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 1991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한국핵연료주식회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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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 1997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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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2001
대덕클럽 회장, (주)가이아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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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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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안장
한국의 원자력 정책과 사업을 주도해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원자력 분야의 최고 권위자
한필순 박사는 한국의 원자력 정책과 사업을 주도하여 원자력 기술자립을 실현하고 원자력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원자력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다.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과 한국핵연료(주) 사장을 10년간 역임하면서 한국을 원자력 기술자립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중·경수로의 핵연료 국산화를 비롯하여 원자로계통 설계를 통한 한국 표준형 원자로와 열출력 300MW 다목적연구용 원자로의 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그토록 바라던 원자력 기술자립을 일구어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연구자들을 꾸준히 해외에 파견하여 선진 원자력 기술을 배우게 하고, 이들과 함께 한국 원자력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런 그의 활약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프랑스 국가최고 명예훈장인 「뢰종드뇌르」를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가 원자력 분야에서 이룩한 대표 성과의 하나는 ‘중·경수로용 핵연료의 국산화’였다. 핵연료는 원자로 안에 장입하여 핵분열을 연쇄적으로 일으켜서 이용 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물질을 말하며, 국산화는 핵연료를 원자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분말형태로 가공하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핵연료의 국산화가 원자력 기술자립의 출발점이라고 여기고, 1983년부터 핵연료 국산화 사업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개발 초기에는 캐나다 원자력공사의 기술지원을 받아보려고도 했으나 요구 금액이 너무 커 무산됐다. 대신 그는 독일에 공동설계라는 방안을 제안하여 기술훈련을 생략하고 소수의 정예요원을 독일로 파견하여 기술을 익혀오게 했다. 그 결과 1987년에 중수로용, 1989년에 경수로용 핵연료 생산 공장을 세워 핵연료 국산화를 달성했고, 이후 모든 한국 원전에는 우리의 핵연료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의 또 다른 원자력 분야의 성과는 원자로계통(原子爐系統) 설계 기술에 바탕한 한국 표준형 원자로의 개발이다. 19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해외기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그는 원자력발전소 역시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만 원자력 기술자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기고, 발전소 건설의 핵심이 되는 ‘원자로계통 설계 국산화사업’을 추진했다. 원자로계통은 원자로를 둘러싼 각종 기기와 설비들의 총칭으로 원자로, 냉각재펌프, 냉각재 순환 배관들, 그리고 가압기, 증기발생기 등이 해당된다. 따라서 원자로계통 설계 국산화라는 것은 각종 기기와 설비들을 우리가 제작하여 직접 관리 운영할 수 있게 시스템을 제작하는 것이고, 이는 곧 한국형 원자로 개발을 의미했다. 그는 핵연료 국산화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공동설계 계약을 맺고 영광 3, 4호기를 대상으로 원자로계통 설계를 진행했다. 1996년 원전이 준공되었을 때 한국은 1,000MW급 가압경수로의 국산화율을 95%까지 달성하며 기술자립에 성공했고, 우리는 ‘한국 표준형 원자로’를 가지게 됐다. 이 성과로 한국은 일약 원자력기술 강국으로 떠올랐고, 그는 최고의 원자력 전문가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한편, 그는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를 개발하여 학문적으로도 원자력 분야에서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1962년과 1972년에 도입한 TRIGA Mark-Ⅱ, Ⅲ이 노후화되고, 한국의 원자력기술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고출력의 새로운 연구용원자로가 필요해졌다. 이런 상황을 가장 일찍 인식한 이가 바로 한필순 박사였다. 그는 앞으로 한국의 원자력기술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도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구용원자로 국산화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원자력 기술자립이 가능해진 만큼 연구용원자로도 자력으로 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1995년 <하나로>가 만들어졌고, 이는 현재까지도 전세계 연구용원자로 중 성능면에서 최상위급으로 평가받고 있어 한국의 원자력기술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성과로 여겨지고 있다.
한필순 박사는 한평생 한국의 원자력 기술자립을 위해 힘을 쏟았고, 이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 최고의 원자력기술을 갖게 됐다. 이런 그의 성취를 기리기 위해 한국 정부는 사후에 그를 대전국립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