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하고 효과적 수술방법 개발
의료보장시스템 설계자이자 무료진료와 인술 베푼 사회봉사자
故 장기려 (張起呂)
복음병원 초대 원장 겸 청십자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1911~1995)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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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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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 1979
평양의대, 서울대, 부산대, 카톨릭대 등 의과대학 외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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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1989
청십자의료보험조합 대표이사
-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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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간장외과학의 개척자, 의료보장시스템 설계자이자 인술 베푼 사회봉사자
장기려 박사는 우리나라 간장외과학의 개척자이자 인술,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한 사회봉사자이며 의료보장시스템의 설계자였다.
그는 193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과학에 입문했다. 1936년까지 약 270건의 실험에 바탕한 “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로 일본 나고야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인에게 발병률이 매우 높은 간암으로 연구를 넓혀 194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간암의 절제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간장외과학을 개척했다. 후속 연구로 ‘간내 혈관 및 담관계의 형태학적 연구’를 비롯해 ‘간 절제술의 절제단의 처치법’과 ‘간경변증시 간 절제의 한계 및 간의 급성 실조시 대상의 방법들에 관한 실험’ 등을 진행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1959년 원발성간암에 대한 간우협절제수술(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했다. 당시 열악한 수술기구나 진단기술의 한계 속에서 수술을 성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후에도 간 연구를 지속하여 1979년에는 20년간 한국에서 실시된 189건의 간 대량 절제 수술의 사례를 수집 및 분석하여 간암의 부위에 따라 수술법을 달리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의 간에 대한 연구와 수술은 우리나라 간장외과학 및 외과학의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는 활발한 학술활동과 함께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시작으로 김일성종합대, 평양의대, 서울대, 부산대, 가톨릭대 등 여러 의과대학의 외과학 교수로 재직하며 남북한 의료 인재 양성에도 공헌했으며, 현재 대한간학회의 전신인 ‘한국간연구회’의 창립(1981)에도 기여했다. 학문적 업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8년 북한에서 국가학위수여위원회의 추천에 따라 박사학위를 수여받은데 이어, 남한에서는 1960년 보건의날 공로상과 1961년 대한의학협회 학술상(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가 간 대량 절제술에 성공한 10월 20일은 '간의 날'로 지정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2006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외과의사였지만 평생 낮은 곳에서 청빈한 삶을 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푼 사회봉사자였다. 1951년 복음진료소(현재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의 개설을 시작으로 청십자사회복지회, 장애자재활협회 등 각종 복지단체를 세우고 1976년에는 청십자병원을 설립하여 소외계층과 지역사회의 복지증진에 헌신했다. 영세민과 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에도 심혈을 기울여 의료복지사업, 취업 알선, 장학사업, 탁아소 운영 등을 통해 장애인들도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등 일생동안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소 사랑을 실천하여 ‘인간애의 표상’으로 존경받았다.
특히, 가난한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1968년에 창설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이자 현행 의료보험제도의 효시로 그의 탁월한 업적 중 하나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기반해 65년간 인술을 베풀며 봉사, 박애, 무소유를 실천했다. 수술비가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돈으로 수술을 해주고, 그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밤에 몰래 환자를 탈출시키기도 했다는 일화는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않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았던 그는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때문에 ‘한국의 슈바이처’, ‘행려병자의 아버지’, ‘성스러운 산(聖山)’ 등으로 불리며,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제1회 호암상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했다.
장기려 박사는 간장외과학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의학자이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푼 박애주의 의사였다. 타계한지 20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그의 삶은 우리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으며, 후세의 수많은 논문과 저서들이 그의 학문적 업적과 의료윤리, 사상과 신앙, 이타적 삶을 조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