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리튬 이차전지 등의 기술개발 선도
우수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세계적 연구소로 육성
故 여종기(余琮琪)
前 LG화학 기술연구원 원장 (1946~2012)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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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화학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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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미국 리하이대학 대학원 공학박사(고분자공학)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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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 1995
럭키 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 LG화학 고분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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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2004
LG화학 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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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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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자화학 기술개발 주도, 한국 화학산업의 기술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
여종기 원장은 고분자화학의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동시에 기업 연구소를 적극 육성하여 한국 화학산업의 기술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여느 과학기술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취업을 했다. 대학이 아닌 산업체 관련 일을 하는 연구소로 진로를 정한 것이었다. 1980년 미국 리하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민간기업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가 전공한 고분자화학에 대한 응용적 개발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그는 당시만 해도 연구환경이 극히 열악했던 기업 연구소에서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의 하나는 그가 1981년부터 LG화학 연구소에서 주도한 고분자화학에 관한 개발연구였다. 프로젝트 리더로서 한국의 핵심 화학산업인 석유화학 분야의 고도화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고기능을 지닌 Engineering Plastic(EP) 개발을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하여 1983년에 새로운 플라스틱 소재로 PBT 수지를, 1986년에는 충격 보강을 위해 아크릴계를 첨가제로 이용한 PVC 충격 보강제를, 그 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에 난연성을 띠게 하는 반응형 난연 ABS(내열성, 내후성, 친환경성)를 개발했다. 이 덕분에 1988년에는 LG화학의 중추적인 EP사업부가 독립적으로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하나는 그가 1996년에 LG화학 기술연구원 원장에 오르면서 추진한 연구개발의 전환이다. 자신의 연구경험을 살려 제품개발보다 공통기반기술, 공정이나 디자인을 넘어 소재의 혁신을 통해 미래 신산업 발굴에 주력했다. 무엇보다 생명과학과 정보전자소재는 전략분야로 선정해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이루어져 세계 최초로 성능이 가장 뛰어난 리튬이온 2차전지와 TFT-LCD용 편광판을 각각 1998년과 1999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뒤이어 그의 지원 하에 이루어진 PDP용 형광체, 리튬폴리머 전지, 항생제 팩티브, 재조합 단백질, 유기 EL 핵심소재의 개발도 눈에 띄는 또 다른 성과였다. 그가 10년간 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LG화학 기술연구원은 1천6백 명의 연구개발인력을 보유한 세계적 연구소로 발돋움했다. 무엇보다 우수한 두뇌와 팀워크를 강조하며 연구자들의 조직적 역량 발휘에 관심을 기울였다. LG화학은 전체 종업원 중에서 연구개발 종사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혁신적인 기업으로 바뀌었다. 이 연구소에서 이루어진 획기적인 기술개발에 힘입어 LG화학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LG화학이 미래 신산업에서 세계적 기술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연구소에서 이룬 뛰어난 연구개발 덕분이다.
이러한 공적으로 그는 1985년에 한국화학공학회에서 수여하는 기술상을 받았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개발을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하여 우수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아시아화학회연맹상(2001), 대한민국과학기술상 기술상(2002), 한국공학한림원 대상(2004)을 수상했다. 기존 석유화학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첨단소재산업을 창출한 점을 특별히 인정받았다. 이밖에 많은 상을 받아 그는 화학업계 최다 수상자로 알려질 만큼 혁신적인 연구자였다. LG화학에서 그의 위치는 국내 화학업계에서는 최초로 기술연구원장 겸 CTO로까지 올랐다.
따라서 여종기 원장은 일반적인 과학기술자들과는 달리 산업계에 도움이 될 실용적 개발연구에 헌신한 현장 지향형 엔지니어였다. 그의 연구개발 신조가 “Think big. Aim high!”(생각은 크게, 목표는 높게 잡아라!)였던 것에서 드러나듯 새로운 변화를 이끌 돌파구를 여는 연구개발에 몰두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 공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수시로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치열한 연구개발 노력과 남다른 비전 덕분에 한국 화학산업의 기술역량은 선진 수준으로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