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높은 ‘통일벼’ 개발해 1970년대 주곡 자급 달성에 기여 동북아 벼의 기원과 전파경로 연구, 일본 벼의 한반도 전래설 입증
故 허문회(許文會)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27~2010)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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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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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 1960
농사원 시험국 농업기원/시험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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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1992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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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 1987
서울대학교 농업개발연구소장
-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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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벼 개발해 쌀 자급자족 실현에 기여한 육종학자
허문회 교수는 대한민국을 오랜 굶주림과 가난의 역사에서 벗어나게 한 ‘통일벼’ 개발자다.
그는 1964년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근무하면서 ‘통일벼’ 육종 연구에 착수해 1971년 품종을 완성했다. 주곡인 쌀을 자급하기 위해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한 후손들의 특성을 연구하여 삼원교배로 뛰어난 장점들을 선발해 통일벼로 고정시켰으며 농촌진흥청, IRRI와 협력해 1년에 2세대씩 번식시키면서 통일벼를 빠른 속도로 육성했다. 후속으로 꽃가루 현미경 관찰을 통한 교배육종방식으로 통일찰벼도 육성했다.
통일벼는 키가 작으면서 줄기가 두텁고 이삭이 크며, 잎이 곧게 뻗어 태양빛을 이용하는 효율이 높아 생산성이 뛰어나다. 자포니카에 비해 30% 이상 많은 쌀을 생산하는 등 세계적으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벼로 평가되고 있다. 허문회 교수는 품질 육종에 문제가 되는 전분 특성을 해결하기 위해 야생 벼가 가지는 불량 품질을 제거하면서 우수한 특성만을 재배 벼로 옮기는 육종방법도 개발했다.
쌀이 항상 부족하던 가운데 농촌진흥청을 통해 1971년부터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면서 1974년에는 재래품종 대비 30% 이상 증수하여 445만톤(3080만섬)을 돌파했다. 1975년에 처음으로 주곡 자급을 달성하고, 1977년에는 통일벼가 전체 벼 재배면적의 절반을 넘으면서 600만톤(4170만섬)을 생산하여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기록했다. 통일벼의 성공으로 육종가의 사기가 크게 높아져 다른 작물 육종기술의 발전과 품종수준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3가지 종을 섞는 삼원교잡 육종기술로 통일벼를 개발하고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이뤄 주곡 자급 달성
허문회 교수는 동북아 벼의 기원과 전파경로 연구에도 매진했다. 동북아 벼 재배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 각지의 고고발굴 현장을 답사하여 발굴된 탄화미를 토대로 벼의 전파경로에 대해 조사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벼의 일본 전파에 관해서는 한반도 전래설을 증거를 토대로 설득력 있게 주장하여 일본학자들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벼의 고고학과 작물학적 연구결과를 연계시켜 제시한 전래과정은 관련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허문회 교수는 작물육종기술 개발에도 크게 기여해 병해충 저항성과 추위에 강한 벼 육종 연구, 쌀의 고단백 및 품질 개선을 위한 성분 육종 연구, 잡종 1대에 나타나는 우수성을 이용하는 육종법 연구, 간척지에 벼 재배를 위한 소금기가 많은 흙에서도 잘 자라는 벼 연구, 유전자 돌연변이 벼 개발 및 분석 연구 등 논문 210여 편을 발표했다. 품질 육종에 문제가 되는 전분 특성을 해결하기 위해 야생벼가 가지는 불량 품질을 제거하면서 우수한 특성만을 재배 벼로 옮기는 육종방법(wx-Carrier technique)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작물학회장, 한국육종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SABRAO(아시아-오세아니아 육종학회), IRGC(국제 벼 유전학회)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