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전력문제 해결 위한 ‘배전 승압 사업’ 이론 닦아 문화재로 등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 설계·제작
故 한만춘(韓萬春)
연세대 명예교수 (1921~1984)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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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 1960
영국 Nottingham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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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영국 Nottingham대학교 Ph.D 취득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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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 1984
연세대학교 교수, 이공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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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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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의 기반을 닦은 전기공학 박사 1호
한만춘 교수는 우리나라 전기공학 박사 1호로, 부족한 전력문제 해결 위해 ‘배전 승압 사업’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한국 전력산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1회로 졸업하고 조선전업(한국전력)에서 기획과장 및 발전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해방 후 북한의 갑작스러운 단전조치에 따른 우리나라의 심각한 전력난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 산학협동을 선도하고 기능올림픽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등 산업기술향상과 산업기능인력 양성에 기여했다.
배전전압 220/380V 승압의 이론적인 근거 제시
한만춘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국비 해외파견으로 영국노팅검대학에 유학, 원자로의 제어분야에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우리나라 전기 및 제어공학분야 최초의 공학박사다. 계통함수 값이 모든 마이너스 영역에서 불안정한 것으로 예측되던 시기에 계통함수 값이 마이너스 영역의 특정 값에서 불안정하다는 이론을 증명하여 전력계통 분야에 제어공학 개념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원자력 발전과 전력계통의 안정성 확보에 기여했다.
1970년대 초 낮은 배전전압(110V) 때문에 생기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220/380V로 승압하는 정책 근거를 제공해 전력계통을 확충하고 1970년대 농촌·가정 전력보급의 전환점을 만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많은 국가가 아직 110V로 막대한 배전 손실을 안고 있어, 선진국에서 한국의 승압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 ‘연세101 아날로그 컴퓨터’를 제작해 전자산업 발전 선도
널리 알려진 한만춘 교수의 업적 중 하나가 바로 1961년 제작한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다. 그는 현재의 디지털컴퓨터가 널리 쓰이기 전인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날로그 컴퓨터를 설계·제작했다.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전력 계통의 안정도 개선 및 제어기 개발,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 연구 등 많은 연구에 활용되면서 당시 우리나라 전기전자공학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석박사 논문 등은 물론, 전력분야해석 등 산업계 문제해석에도 폭넓게 활용되면서 많은 업적을 낳았고 부품과 시스템 제작과정, 제작기술, 제작결과가 논문으로 만들어졌으며 국내 컴퓨터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어 과학기술분야에서는 드물게 문화재(제557호)로 등록됐다.
한만춘 교수는 1948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교육과 연구를 시작해 1955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초대 공학부장, 이공대학장, 산업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전기학회 회장으로 초창기 전기공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하고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전기학회 창립 회원(1947년)으로 대한전기학회 회장(1973~1977년)을 역임했으며, 세계전기표준위원회(IEC) 한국위원장으로 전기표준을 주도하고 국제화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