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약학 근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고 약학교육의 기틀 마련 해방 전후 환경 및 식품 위생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효시
故 한구동(韓龜東)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08~2000)
- 학력사항
-
-
1927.03
경성 제2공립고등보통학교(現 경복고교) 졸업
-
-
1963.02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학박사 학위 취득
- 경력사항
-
-
1946.02 ~ 1946.09
미군정청 보건후생부 국립화학연구소(現 국립보건원) 소장
-
1950.01 ~ 1974.02
서울대학교 교수
-
1950 ~ 1962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장(초대, 2대, 3대)
- 포상
-
-
-
1963.08
8.15 해방기념 학술문화훈장(국민장)
-
한국 약학 연구·교육의 아버지
한구동 교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태동기에 약학연구와 교육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한 우리나라 약학의 아버지다.
그는 1930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전신인 조선약학교를 졸업한 후 해방을 맞기까지 15년간 국내 유일의 약학 관련 연구기관이었던 위생시험소에 근무하면서 우리 민족의 식생활과 위생문제를 다루는 연구에 매진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약학근대화의 기반을 구축하고 좌표를 설정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당시 업적 중 우리나라 식품의 영양학적 연구(4편)와 전국의 온천성분에 관한 연구(6편) 등은 방대한 연구로서 현재까지도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과 위생 연구로 약학 근대화 기반 조성
위생시험소에 근무할 당시 연구업적 중 155종에 달하는 한국식품과 161종에 달하는 야생식용식물의 영양학적 성분을 연구해 이들의 영양가치를 밝힌 연구 논문은 우리나라 식품영양학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한반도에 산재해 있는 총 41개소에 달하는 온천의 함유성분을 규명한 연구는 각 온천의 화학적 성질과 치료적 이용의 척도가 될 수 있는 효능을 밝힌 매우 귀중한 연구다.
한국인 1,088명을 대상으로 한 미맹의 분포에 관한 연구 또한 후속연구에 훌륭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20여 편에 달하는 식품위생, 환경위생 분야에 대한 조사연구논문을 발표함으로써 당시 매우 열악했던 국민보건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 같이 한구동 교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약학연구의 초석을 마련한 선구자로서 약학연구와 약학교육에 있어 큰 공헌을 했다.
약용식물 등의 영양학적 성분 연구 활성화
한구동 교수는 해방과 더불어 국립위생시험소를 관리하다가 이듬해 미군정이 이 기관을 국립보건원의 전신인 국립화학연구소로 개편했을 때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서울약학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이 대학이 국립서울대학교에 편입될 때 초대학장으로 취임해 11년간 학장으로 재직했다.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6.25 전쟁 중에도 대학을 지키고 전후 복구기간 중에도 대학을 이끌면서 폐허와 혼란 속에서 앞날을 기약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열과 성을 다해 교육함으로써 초창기 대한민국 약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생약연구소 소장에 취임, 발전에 크게 공헌했고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재출범한 현재의 대한약학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15년간 회장직을 맡아 학회를 이끌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특산식물인 신나무 잎의 Tannin에 관한 연구를 포함한 10여 편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신나무 잎의 Tannin 중 저자가 구조를 규명한 Polygagallin은 영국의 A.G.Perkin과 일본의 上田가 각각 그 존재를 예측하고도 그 정체를 밝히지 못했던 물질로, 그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1966년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의 전신인 생약연구소 교수로 취임하면서 그의 천연물질 연구력은 최고조에 이르러 귀중한 성과를 산출했다. 특히 혈압강하, 항염증 효능이 탁월한 약초인 희첨의 성분에 관한 연구는 대표업적 중 하나다.
이 연구는 독창성과 학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1968년 미국생약학회 제9차 연례학술대회에 초청되어 강연하기도 했다. 이때 발표내용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이탈리아 밀라노대학교 약리학연구소 소장 Tarabucchi 교수의 초청을 받아 유기화학연구소에서 일류 연구진과 협력, 이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를 영국에서 발간하는 권위 있는 유기화학분야 학술지 Tetrahedron Letters에 발표했다. 또한 이 연구를 집대성해 1971년 대한민국 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