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견을 처음 국산화한 화학섬유공학자로 서울대 공대발전의 초석을 다졌고 과학기술 진흥 위해 평생 헌신
故 김동일(金東一)
서울대학교 교수 (1908~1998)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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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 1933
동경제대 공학부 응용화학과(공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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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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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 1959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초대 및 3대 공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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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 1954,
1960 ∼ 1962,
1967 ∼ 1972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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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 1976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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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섬유로 산학협력을 일궈낸 교육자로, 인견(레이온)을 개발하여 흥한화섬 인견공장을 건설하고, 서울공대 초대 학장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력 양성에 힘씀
김동일 교수는 서울대 공대의 초대 및 3대 학장을 맡아 해방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학교육의 기반을 확충하고 기술인력을 길러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해방 이후 경성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경성대 공학부의 정식 대학과정과 경성공업전문학교, 경성광산전문학교 3개교가 통합해 창립된 국립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초창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학장으로써 교수진 확보에 노력했으며 좌우대립과 국대안파동(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반대)을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대처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자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화학섬유공학자인 그는 학장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산·알칼리, 인조비료, 유리공업, 화약, 화학공업개론 등의 과목을 전임교수가 구해질 때까지 강의하는 열의를 보였다. 학장 임기를 마치고 교수직에 전념하던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제3대 학장을 다시 맡아 전시 하에서 대학과 학생들을 지키는데 노력했다.
1959년 14년간의 공대 교수 및 학장 생활을 마감한 그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원자력원, 대한화학회,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현 과학창의재단), 한국석유산업개발센터 등 정부와 과학기술단체, 산업계를 넘나들며 실학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진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창립 및 과학기술회관 건립 주도
196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창립 준비위원으로 실무를 주도하며 90여개 과학기술단체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과총 초대 부회장을 맡아 과학기술회관을 건축할 때 모금운동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1959년에는 원자력원 초대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어 제1차 원자력학술회의를 주도했으며, 고급인력 양성을 위한 해외 파견계획을 지휘하는 등 원자력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다.
1951년부터 1972년까지 총 6번이나 대한화학회 회장을 맡아 학회 발전에 초석을 다졌으며 1966년부터는 화학회관 건립위원장으로 활동해 1971년 화학회관 건립을 이뤄냈다.
대한화학회 회장을 6번이나 역임하며 학회 발전 기여
1954년 대학민국 학술원 초대 회원이 되었고, 1978~1981년에는 자연과학부장으로 활동했으며 대한요업총협회 회장, 대한요업학회 초대~3대 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에는 한국석유산업개발센터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으로서 국가적으로 절실한 석유탐사와 개발연구를 선도했다.
1978년 서울국제사이언스클럽을 창설해 초대 이사장과 명예회장을 지냈으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집행위원, 유네스코 총회 한국 대표,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연합(IUPAC) 한국 대표, 국제과학연합(ICSU) 총회 한국 대표 등으로 활약하며 국제 교류에도 큰 공헌을 했다.
김동일 교수는 인조견을 처음 국산화한 화학섬유공학자다. 1933년 동경제대 공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화학회사에 근무하면서 유리 생산원가를 줄이는 공정을 고안해냈다. 또한 삼초산 섬유소를 원료로 인견사를 만드는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해 8건의 일본 특허와 논문을 발표했다.
1942년 당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의 영등포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본인 공장을 능가하는 실적을 올림으로써 조선인 기술자의 우수성을 보여줬다.
1949년 삼작산 섬유소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고 1952년 4월 서울대 이공계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2년 흥한화학섬유(주) 부사장을 맡아 일제하에서의 화학공장 재직시 쌓은 경험을 살려 국내 최초로 비스코스 인견사 공장을 성공적으로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