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자리 에타별이 맥동변광성임을 증명한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
해방 후 기상청 이끈 한국 천문기상학의 개척자
故 이원철
국립중앙관상대 초대대장 (1896~1963)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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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연희전문학교 수학물리과 졸업 (1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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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 1926
美 미시간대학교 천문학 전공 (이학 석·박사)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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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 1938
연희전문학교 수학물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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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 1965
인하공과대학(현 인하대) 초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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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2002DB1)에 이름을 남긴 세계적인 천문 기상학자
이원철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로 평생을 항성연구 개발에 쏟으며 대한민국 교육과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한 교육자이며 지도자이다.
연세대학교 전신인 연희전문의 1회 입학생이자 1회 졸업생으로 당시 수학물리과를 졸업한 4명의 동문이 전원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나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으로 발표한 ‘독수리자리 에타별에 대한 연구’는 당시 천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고생하던 우리 민족에게 큰 자긍심을 안겨주는 등 대한민국 항성연구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이 논문은 독수리자리 에타별이 시간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밝기가 변하는 ‘맥동변광성’임을 정교한 분광학적 관측과 계산으로 밝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논문은‘Publications of the Observatory of the University of Michigan’에 게재되었다. 독수리자리 에타별은 이후 ‘원철성(星)’이라는 별칭으로 삼천리 등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며 일제식민지 치하의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준 학술업적으로 남았다.
일제 치하, 전쟁 등 국가적 재난기에 대한민국 기상과 천문업무의 기틀 마련
이원철 교수는 1926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모교로 돌아와 연희전문 교수로 재직하며 12년간 대한민국 수학과 천문학의 기본 틀을 쌓았다. 1928년에는 대학 구내에 한국 최초로 현대식 굴절망원경을 설치해 교육과 연구에 활용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연희전문 개교 당시부터 지속되어오던 천문학 강의가 더욱 내실 깊어질 수 있었다.
대표적인 반일인사이기도 했던 이원철 박사는 백낙준, 최현배 교수와 함께 수양동우회 사건, 흥업구락부 사건,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교수직을 두 번이나 박탈당하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식민지 치하 열악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해방 직후엔 현대적인 기상대 체계를 갖추는 일에 매진했다. 군정 치하에서 일제의 기상대를 인수해 관상대장으로 부임, 이를 국립중앙관상대로 발전시켜 대한민국 기상과 천문업무의 기틀을 마련했다. 1948년부터 1961년까지 초대중앙관상대장으로 근무하며 열악했던 우리나라의 기상 및 천문학 분야를 개선하는 한편 한국 최초의 과학기관인 국립중앙관상대에서 국가의 시간 기준이 되는 역서를 발간하는 등의 업적을 쌓았다.
우리나라 최초 공과대학인 인하공과대학을 설립하고 연희전문과 세브란스의 합병에 공헌, 우리나라 의학계와 교육계 기틀 다짐
전쟁 중에는 정상적인 기상관측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전쟁 후에는 복구와 민간항공기 기상 지원을 위해 김포국제공항측후소를 신설해 민간항공기 안전운항에 기여하고 1961년 서귀포 출장소 기상관측센터의 신설 등 대한민국 기상관측업무 및 항공기 운항업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의 통합에도 관여하며 우리나라 의학계의 기틀을 마련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연희이사회 이사로 활동하고 1952년부터 10년간은 연희 및 연세재단이사회 이사로 재직하며 학교 부흥 및 후학 양성에 기여했다. 세브란스 통합 이후 1960년 발족한 연세동문회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 공과대학인 인하공과대학 설립과정에 참여했고, 초대학장으로 선임되어 현재의 인하대학교를 건립하는데 있어 기초를 닦았다. 우리나라 천문학을 발전시킨 장본인으로 당시 열악했던 국내 교육 여건 속에서도 대학 교육과 YMCA 재단 이사와 이사장을 역임하고 대중 과학강연을 통해 자신의 학문적 열정과 재능을 기부했다.
전 재산을 YMCA에 기부하며 마지막까지 사회봉사를 몸소 실천한 이원철 박사는 2002년 한국천문연구원이 발견한 소행성 ‘2002DB1’의 정식 명칭(이원철, Leewonchul)으로 헌정되며 빛나는 하늘의 별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