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기초 원리 규명한 '종의 합성 이론' 증명한 육종학 대가,
광복 후 식량난 해결한 한국 농업 근대화의 아버지
故 우장춘(禹長春)
농업과학연구소 초대소장
(1898~1959)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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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일본 도쿄제국대학 부설 농실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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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05.04
일본 도쿄제국대학 (농학박사-원예육종학)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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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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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합성’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세계 유전육종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
우장춘 박사는 1936년 일본도쿄제국대학교에서 받은 박사학위의 핵심 내용인 ‘종의 합성’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해 세계 유전육종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자다.
그는 배추속 식물인 배추와 양배추의 교잡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유채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종간잡종과 종의 합성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현존하는 식물을 실험을 통해 합성한 최초의 예로 알려져 있다. 우장춘의 이론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보완하는 내용으로, 현대 유전학 교재에도 인용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한국에 소개한 씨 없는 수박은 그의 이론에 근거해 일본의 학자가 개발한 것이었다. 그는 이후 그가 밝혀낸 교잡 방법을 통해 식물 육종학을 실현, 유전학과 결합한 육종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50년 3월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 땅에 돌아온 그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장에 취임해 1959년 8월 작고할 때까지 채소를 비롯한 감자, 귤 등의 우량종자를 개량하여 종자 생산과 자급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식물의 자가불화합성을 활용해 한반도에서 잘 자라며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 배추와 무’를 개발했고,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강원도 감자’와 겨울 추위를 견디는 ‘제주도 감귤’의 재배법도 확립했다. 고추, 오이, 양배추, 양파, 토마토, 수박, 참외 등 20여 종의 농작물 종자를 확보하는데도 기여했다. 이 같은 그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들여오던 각종 종자의 반입이 중단되었던 해방 이후 어려웠던 상황을 극복하고 농작물의 종자 국내 확보와 자급이 이뤄질 수 있었다. 1955년에는 채소종자의 국내 자급이 가능해졌고 이는 국내 채소종자산업이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배추와 무, 강원도 감자, 제주도 감귤 등 우량종자를 개량해 종자 생산과 자급 실현
또한 우장춘 박사는 연구기관을 세우고 채소와 화훼에 관한 세계 유수의 유전육종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보급하면서 연구 인력을 배출하는데 힘써 한국 농학의 뿌리를 다졌다. 1953년 중앙원예기술원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유전자원의 도입, 특성 검정 및 선발에 이어 일대잡종 품종 육성을 시도해 성공했다. 일대잡종은 일반적으로 고정종보다 생산 수량이 많고 품질이 좋으며 병해충에도 강한 품종이다. 배추과 작물의 자가불화합성을 이용한 일대잡종 종자생산 기술은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다. 이 기술을 활용해 배추 품종인 ‘원예1호’, 양배추품종인 ‘동춘’을 육성해 민간종자회사에 분양했다. 양파, 고추 등 자가불화합성이 없는 작물에서는 웅성불임을 이용한 일대잡종 육성기술의 체계를 세웠다.
우장춘 박사는 유전자원의 수집, 평가, 유지와 보존에서부터 유용한 자원의 선발, 품종 육성 과정, 일대잡종 종자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몸소 실천하고 지도함으로써 우수한 지식과 경험을 살려 후진을 양성했다. 후진들은 연구소, 대학교, 민간종묘회사 등에서 국내 채소산업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배추과 작물의 일대잡종 육성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고, 웅성불임을 이용한 일대잡종 품종 육성에 있어서도 국내 기술 수준을 세계 상위급으로 이끄는 기초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