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건학을 정립하고 국민보건체계를 확립한 보건학 분야 대부이자, 의학분야 교육 및 인력양성의 기틀을 마련한 의학교육의 선구자
故 권이혁 (權彛赫)
서울대 명예교수 (1923~2020)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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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09 ~ 1947.08
서울대 의학(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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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09 ~ 1951.05
서울대 예방의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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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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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6 ~ 1983.10
제15대 서울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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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02 ~ 1988.12
보건사회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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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03 ~ 1993.02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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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 ~ 2020.02
제8대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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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보건학을 개발, 집대성한 한국형 보건학의 대부
권이혁 교수는 개인 환자의 질병 진단과 치료가 핵심적 주제인 전통적 의학에서 벗어나 건강인을 포함하는 인구집단의 건강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의학영역, 즉 보건학을 국내에 정착시킨 선구자다. 보건학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불건강 요인을 연구, 탐색하고 그 요인의 효과를 제거 또는 경감하는 수단을 개발해 인구집단 전체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학영역이다. 따라서 질병을 핵심 주제로 하는 전통적인 의학과는 달리 선진국 등에서 연구·개발된 내용을 그대로 도입, 적용할 수 없다. 보건학은 생물학적 측면의 건강-질병뿐 아니라 해당 지역사회의 사회문화적 및 생활환경적 특성도 같이 연구, 개발하여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권이혁 교수는 보건학의 학문적 개념과 이념을 도입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보건학을 연구, 개발하여 국내 보건학을 정립한 보건학 분야 대가다. 이를 위해 1960년대부터 인구집단에 대한 사회의학적 및 생태의학적 연구를 수행했는데 특히 도시인구, 영세민/저소득층 인구, 맹인, 소아인구, 노인인구, 임산부 인구 등의 특수 인구집단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그 특수성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반영되는 발전된 한국형 보건학을 정립했다.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보건학을 개발, 정립하는 학문적 활동을 지속했으며, 저서 ‘最新保健學’은 1982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권이혁 교수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보건학은 각 대학 및 대학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개설, 운영되는 교양 또는 전공 교과목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30여 년간 우리나라의 보건학을 개발, 정립하는 학술적 활동에 이어 보건사회부 장관직(1988년)을 수행하면서 우리나라의 국민보건체계를 확립하여 국민보건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영양, 환경, 질병관리, 인구의학, 식품공중위생관리/의약품 안전성 유효성 관리, 특수질환관리 등의 주요 국민보건향상 관련 기술개발과 함께 정책 개발을 선도했으며 보사행정의 과학화를 추진, 발전시켰으며 전 국민 의료보장체제를 완비했다.
교과과정 및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개발에 힘쓴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선구자
권이혁 교수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선구자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70년대 초까지의 우리나라 의학교육 체제는 교육과정 일부에서 진척은 다소 있었으나,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의 답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이혁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직을 수행하면서(1970~1976), 우리나라 의학교육 체제의 전면 개편을 위한 연구 사업을 추진했다. 교과과정 개편은 물론, 특히 학습 및 교육원리에 대한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개발에 역점을 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통합교과목(일명 Block Lecture)을 신설, 운영하는 교과과정 개편을 단행했고,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를 개발했으며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학습 및 교육원리에 관한 연수교육을 담당하는 ‘의학교육연수원’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산하 기구로 설립, 운영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권이혁 교수가 1970년 초에 개발, 개편한 의학교육 체제는 우리나라 의학이 연구와 교육/인력양성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이후 1990년 3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제10대 회장으로 취임한 권이혁 교수는 우리나라 성장 원동력을 과학기술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시대적 필요성에 부응하는 조치로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제 신설을 대정부 건의하여(1992년), 2004년에 과학기술부 부총리급 승격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인의 권익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과학기술인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과학기술회관 건립을 1990년 추진, 1995년에 준공함으로써 국내외 과학기술 관련 학술행사를 수용하고 과학기술진흥의 풍토조성 마련에 획기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진흥 풍토조성과 과총 자립 기틀 마련
민간차원의 남북과학기술 교류의 물꼬를 튼 선구자적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 중 하나다. 민간차원에서의 남북한 과학기술자 간 교류와 협력, 자연과학분야의 공동연구 및 연구결과 상호 교환 등을 추진하기 위해, 1990년 4월 남북 민간과학기술교류협의회를 창립하고, 그 해 ‘8.15범민족대회’에 북한 과학기술계 인사들을 초청했으며, 북측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과 과총 간의 협의체 구성을 전제로 한 정식교류를 제의하기도 했다. 이 초청은 성사되지 못했으나 1991년 8월19일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열린 ‘91 중국 국제과학기술학술대회’에서 남북한 과학기술인의 첫 번째 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권이혁 교수는 환경처장관 재직 시(1991~1992) 환경기술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예산편성을 신설해 종합환경연구단지 조성, 오염측정 장비현대화, 조사연구사업 강화 등의 국책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국제환경협약대책위원회 신설 및 KIST의 환경연구센터 등과 산·학·연 합동연구체제 구축 등 저공해기술개발을 촉진하는 인프라를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