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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의 파스퇴르' 故 이호왕 교수, 과기계 '황금별'로 영원히 빛나길

작성일
2024-07-03
조회수
1,471

20_이호왕.jpg 이미지입니다.

[이호왕 과학기술유공자 일러스트]

 

‘들쥐의 내장 샘플에 환자의 항체가 있는 혈청을 반응시키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밤하늘의 은하수 같이 노란 별이 반짝였다.’

1975년, 바이러스에 감염된 들쥐의 허파 조직을 들여다보던 고려대 이호왕 교수는 형광색소를 넣은 감마글로불린(면역단백질)이 형광빛을 내는 것을 발견했다. 아르키메데스가 외쳤던 ‘유레카’(Eureka)의 순간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평생 최고의 ‘인생샷’(가장 멋진 장면)이다. 

‘한탄바이러스’(Hantaan Virus)가 괴질의 범인이라고 밝혀낸 이호왕 교수는 5년뒤 집쥐(시궁쥐)에서 또 다른 ‘노란 별’을 발견했다.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쥐를 잡은 뒤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말을 듣고, 쥐를 잡아 확인한 결과 괴질의‘공범’ 중 또 한 놈을 특정한 것이다. ‘서울바이러스’(Seoul Virus)다. 괴질이란 한 때 ‘유행성출혈열’이라 불린 콩팥증출혈열이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기에 한 번도힘든 세계적인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뜻밖의 행운)가 이 교수에게는 두 번씩이나나타났을까? 

191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낀 아무르(흑룡) 강 유역에서 처음 보고된 괴질은 공교롭게도 전쟁을 따라 만주, 한반도까지 퍼졌다. 이로부터 30년 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는 풍토성 출혈열을일으키는 범인이 한타바이러스(Hanta Virus) 속(屬)인 것을 확인하고, 1982년 그 질병을증상에 따라 ‘콩팥증출혈열’(신증후군출혈열)과 ‘심폐증후군출혈열’이라 명명했다.한타바이러스는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속)이다. 

이런 콩팥증출혈열의 질병사를 보면 왠지 낯설지 않다. 지금 온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와 상당히 비슷하다. 둘 다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콩팥증출혈열은 들쥐에게서 옮았고, 코로나19는 박쥐에게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100년 전 콩팥증출혈열은 군부대를 따라 이동했고, 코로나19는 온갖 교통수단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이호왕 교수는 어쩌면 지금으로 치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하고 백신까지개발하여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과학자’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업적이 해마다만주나 한반도에 유행하는 가을 풍토병의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그 백신을 개발한정도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타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출혈열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러시아는 물론 서쪽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세계 각 지역을 휩쓰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콩팥증출혈열은 지금도 해마다 세계적으로 20만 명이 넘는 환자를 괴롭히고 있다.첨단의학이 발달한 지금은 ‘3급 감염병’으로 격하됐지만, 백신이 없던 시절 일본뇌염만큼 다들 두려워했던 전염병이다. 

혹시 바이러스에 붙은 ‘한탄’이나 ‘서울’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가 콩팥증출혈열을 한반도의 풍토병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쥐가 잡힌 ‘한탄강’과 ‘서울’이라는 지명은 이호왕 교수가 자랑스럽게 붙인 ‘K-브랜드’다. 당시 세계 최강 군사력을 지녔던 일본과 미국의 최고연구팀도 풀지 못한 과제를 해결한 한국의 이호왕 교수가 오롯이 고집했던 학명이다.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데 획기적으로 기여한 과학기술자를존경하고 예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는 7월 5일은 이호왕 명예교수가 서거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되어 있는이호왕 교수가 한국 과학기술사의 ‘황금별’로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빛나길 바란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ojyoo@kast.or.kr 

출처: 전자신문 (202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