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신호전달 연구의 세계적 선구자 '이서구 박사'
평생 세포 신호전달 물질 연구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 개척
여러 만성질환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에 기여
우리나라 생명과학 성장을 이끈 선구자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했지만 인류는 아직 모든 질병을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생명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인체의 신비를 풀었고 결코 정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이서구 박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암, 심혈관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 여러 만성 질환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는 1965년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가톨릭대학으로 유학하여 유기화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서구 박사는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미국에서 처음 생화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없었지만 미국에는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루었던 상황이었다. 이서구 박사는 당시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소재한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의 생화학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국립보건원 근무 초기에는 당시 지도 교수가 연구하던 대장균 글루타민 합성효소 시스템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으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학회와 세션에 참가하며 연구주제를 찾았다. 그는 오랜 시간 탐구한 끝에 포스포라이페이스 C(PLC)를 연구 주제로 삼는다. PLC는 세포의 신호전달 체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지질 분해효소인데 당시에는 신호전달물질로서 PLC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그 효소가 우리 몸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을 때였다. 그는 유기화학을 공부해 왔기 때문에 동물 세포에 관해 실험한 적은 없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근 도살장에 가서 소 브레인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수많은 연구 실험을 강행했다. 그 결과 포스포라이페이스 C(PLC)의 아이소자임 7개를 세계 최초로 분리하고 정제하여 유전자를 찾아냄으로써 분자적 차원에서 신호전달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PLC의 여러 아이소자임이 세포 표면 수용체에 의해 유도되는 신호전달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기전을 규명해 PLC를 통한 신호전달 연구를 체계화했다. 새로운 항산화 단백질인 퍼옥시레독신(Peroxiredoxin)을 최초로 발견하여 명명하고 대사과정에서 생성되는 유해 부산물로 여겨지던 과산화수소가 세포 내 2차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한다는 점을 발견해 산화환원 신호전달 분야를 개척하는 데 이바지한 것도 이서구 박사의 큰 연구업적이다. 90년대 퍼옥시레독신을 발견했을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집요함으로 10여 년 만에 학계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이서구 박사의 이러한 업적으로 인해 과거 활성산소를 독성 물질로만 간주하고 연구해 온 암, 심혈관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의 연구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 만성 질환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생 산화환원 신호전달 연구에 일생을 바친 이서구 박사는 국내에 들어와 후학을 양성하고 국내 생명과학 연구 인프라 구축에도 힘써왔다. 미국립보건원에서 연구책임자로 활동할 때 한국인 박사를 배출하여 한국의 현대적 생명과학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만들었다. 1998년 이화여대 세포신호전달연구센터가 과학기술부 선도연구센터(SRC) 사업에 선정되고 자연대와 약대를 융합한 생명약학대학원을 설립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더불어 일생동안 총 324편의 SCI급 논문을 편찬하였는데, 그 중 피인용횟수가 2024년 6월 기준 50,985회에 달한다는 점은 그의 연구의 파급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연구성과와 국내외 생명과학 발전을 위한 노력의 공로를 널리 인정받아 국내에서는 호암과학상(1995), 한국분자생물학회 일천상(2000), 한국분자생물세포학회 청산상(2011), 미래창조과학부 지식대상(2013) 등을, 국외에서는 미국립보건원 원장상(1991), 프리라디칼 생물의학회 디스커버리상(2005), 캘리포니아 옥시젠 클럽 및 자로우 포뮬러스 건강과학상(2014)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대한민국 ‘제1호 국가과학자’로 선정되었다.

Q. 우리나라 생명과학 성장을 이끈 선구자이신데, 많은 분야 중 생명과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국내에 생명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었는데 미국에 유학을 가서 생화학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유기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당시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미국 국립보건원으로 가게 되었고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생화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국립보건원 초기 근무 기간에는 대장균 글루타민 합성효소 시스템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나, 1980년대부터 효모 글루타민 합성효소를 정제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새로운 항산화 효소를 발견하고 세포 표면 수용체에서의 신호 전달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하셨는데요, 이후 국립보건원에서 개척한 산화환원 신호전달 연구가 교수님의 평생 연구주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연구개발을 하실 때는 어떤 관점과 방향성을 갖고 임하시는지요.
연구주제를 정하고 연구에 매진할 때에는 도전정신과 집요함을 갖고 임해왔습니다. 처음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저를 지도해 주셨던 박사님께서 남들이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아 도전해보라고 이끌어 주셔서 학회를 전전하며 어떤 연구를 해야 과학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답보 상태에 있던 PLC에 관한 연구과제를 발견했고 오랜 시간 연구에 매진하여 세계 최초로 PLC연구를 체계화하였습니다. 더불어 퍼옥시레독신 항산화효소 등의 발견은 학계의 외면을 받았지만 집요함과 도전정신으로 끈질기게 연구를 이어갔고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습니다.
Q. 포스포라이페이스 C 아이소자임 발견 등으로 세포 신호전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셨고, 퍼옥시레독신 항상화효소의 발견 등으로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를 개척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활성산소를 독성 물질로만 간주하고 연구해 온 암, 심혈관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의 연구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암을 비롯한 여러 만성 질환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 과학기술자로서 느끼는 보람과 책임의식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세포신호전달체계에 관련된 인자 중 하나인 포스포라이페이스 C(PLC)에 관해 연구를 시작했던 당시에는 PLC에 관한 연구가 답보상태에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그것을 연구과제로 삼고 연구한 끝에 3개의 PLC를 분리, 동정하여 유전자를 찾아냄으로써 분자적 차원에서의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4개의 PLC를 더 발견하였고 각각의 PLC들이 어떻게 외부자극에 의해서 활성화되는가를 세계 석학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구명함으로써 PLC연구를 체계화하였습니다. PLC효소들과 암, 심혈관계 질환 등과의 관련성이 밝혀짐에 따라 현대인들의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연구과정에서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동시에 기초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좀 더 제시해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남아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이화여자대학교 분자생명과학원 원장, 연세의료원 연세의생명연구원 원장, 기초과학연구원 이사장 등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기초과학 발전에 이바지 해오셨습니다. 국내 생명과학분야의 선구자로서 힘든 점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힘들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미국립보건원은 재정적인 부분이나 연구활동 등이 자유롭고 제약이 많지 않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과거 한국에서는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라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고 시기적으로 국내에서도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관심이 점점 확산되고 있었던 때라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제안이 많았는데 실질적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연구소를 세우고 사람을 모아서 실험실을 셋업하려면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연구에 매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오퍼가 왔을 때 당시 총장님께 요청을 했더니 이화여자대학교와 제가 있던 미국립보건원이 상호 연구 협력 MOU를 맺어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셨어요. 거의 6년간을 미국과 한국에 각각 1년에 6개월씩 머물며 연구를 이어갔어요. 또한 미국에서 했던 연구를 한국에서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도 계세요. 2006년도에는 국가과학자라는 제도가 생겨서 제가 1호 국가과학자로 선발되었고 굉장히 큰 연구비를 받아 연구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Q. 교수님이 지치지 않고 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매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생명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던 시기에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 무척 좋은 원동력이 됐습니다. 또한 저를 독려해주고 함께 공동 연구에 매진해온 능력 있고 좋은 협력자들이 있어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협력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과학기술인들이 연구를 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 혹은 덕목을 지녀야 할까요?
과학기술인은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연구과제에 착수했을 때 끝까지 연구를 밀고 나가겠다는 고집,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끝까지 증명해내는 고집,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 고집이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유공자님께서 후학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가장 큰 유산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처음 연구를 할 때 지도교수님께서 새로운 분야를 찾아서 빨리 독립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 조언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학계에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분야를 찾고 머리에 번쩍 드는 생각이 있다면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Q. 스스로 생각하는 ‘지금의 나를 만든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 평탄한 가정, 세계가 과학 불모지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에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제가 대학에 들어가 학문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지도교수님들이 생각납니다. 힘들고 척박한 시대였지만 학문에 매진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어 나라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독려하셨습니다. 이런 교수님들 덕분에 모교에 훌륭한 과학자가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이 저만의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스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서구 박사는 1965년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가톨릭대학에서 유기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립보건원 초기 근무 기간에는 대장균 글루타민 합성효소 시스템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으나, 종신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부터 효모 글루타민 합성효소를 정제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새로운 항산화 효소를 발견했다. 또 이 시기 동안 세포 표면 수용체에서의 신호 전달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하였고 국립보건원에서 개척한 산화환원 신호전달 연구는 그의 평생의 연구주제가 되었다. 그는 1980년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효소 ‘퍼옥시레독신(Prx)’을 발견하는 등 33여 년 동안 활성산소에 대한 300여 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퍼옥시레독신이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해 독성을 제거하고 세포 내 신호전달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세포신호전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를 개척한 이서구 박사의 연구 성과는 현대인들의 질병 치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암, 심혈관계 질환, 퇴행성 뇌질환 등 현대인의 질병 중 90%가 활성산소와 관련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활성산소의 발생과정이 규명되면서 질병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귀국 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등에서 연구와 제자 양성을 이어가며 한국생명과학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서구 박사는 평생 동안 세포신호전달이라는 한 분야에 몰두하며 산화환원 생물학 분야를 새로이 창출하였고 한국의 생명과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생명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