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기기 국산화의 길을 연 메디슨의 창업자
한국 벤처생태계와 코스닥 시스템의 설계자
‘기업가정신’을 한국 사회에 도입·전파한 교육자
故 이민화
前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1953~2019)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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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197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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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1978
한국과학원(KAIS) 전기및전자공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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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6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박사
-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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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00
(사)벤처기업협회 설립,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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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9
한국기술거래소(KTM)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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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초대 기업호민관실 호민관(차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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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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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박사는 의료기기 국산화를 개척하고, 한국 벤처기업 생태계를 설계한 기술창업 선구자다.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 아버지의 잦은 전출로 속초, 원주, 부산 등 전국 각지를 옮겨 다니다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1976년 한국과학원 전기및전자공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박송배를 지도교수로 하여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사용한 자동 선로 측정기”라는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한 그는 1978년 대한전선 중앙연구소 정보처리연구부에 입사했다. 대한전선에서 그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활용한 신기술 개발을 맡아 한글프린터, 개인용 컴퓨터, 미니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등을 연구했고, 주요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4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친 그는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1982년 한국과학기술원으로 돌아갔다.
학교로 돌아온 그는 박송배 교수팀이 진행하던 초음파진단기 개발 연구에 참여하며 의료기기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진단기의 시스템 및 부품 설계를 담당하며 개발을 주도하던 그는, 박송배가 미국으로 교환교수로 떠난 뒤 연구팀을 이끌게 됐다. 그러나 상용화를 앞두고 후원하던 남북의료기가 지원 중단을 결정하면서 연구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 그는 여러 기관과 기업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고, 결국 연구팀과 함께 직접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1985년 팀원들과 사비를 모아 회사를 창업하고, MEDICAL(의료)과 SONICS(초음파)를 합쳐 ‘메디슨(MEDISON)’이라고 이름 지었다. 7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그는, 회사 경영과 연구를 병행하며 1986년 “초음파 B-스캔 시스템의 성능 향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메디슨의 첫 제품은 초음파진단기 SA-3000이었고, 그는 진단기 판매를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사업 전략을 펼쳤다. 매출은 해마다 급성장해 1990년 SA-4500의 출시와 함께 메디슨은 의료기기 매출 국내 1위를 차지했다. 또한 1988년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해 1996년 세계 최초의 3차원 초음파진단기 상용화를 계기로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1995년 그는 (사)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벤처기업이 한국 경제의 미래라는 신념을 가지고 벤처 생태계 조성에 힘썼다. 1996년 벤처기업이 안정적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중소·벤처기업이 상장할 수 있는 기구인 코스닥(KOSDAQ)의 설치를 이끌었고, 1997년에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해 벤처기업 성장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기술보증기금 제도 개편, 스톡옵션 도입, 창업투자회사 제도 정비 등 벤처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구축했다. 2009년에는 까다로운 규제와 행정절차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신설된 ‘기업호민관실’의 초대 호민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1,200건이 넘는 기업 애로를 처리하고, 공인인증서 의무화 폐지를 이끌어내는 등 기업 환경 개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그는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재정적, 법률적, 사회적 기반 마련에 앞장선 선구적 벤처기업가였다.
2009년 그는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초빙교수로 부임하며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기업가정신’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이공계 인재들에게 단순한 취업보다 기술 기반 창업에 도전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혼자 똑똑한 천재보다 협력하는 괴짜가 더 필요하다는 교육철학을 후학들에게 전했다. 2013년에는 창조경제연구회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기를 O2O(Online to Offline) 혁명으로 규정하며, 이에 맞는 인재 양성, 클라우드 및 데이터 규제 완화, 인공지능 육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2019년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원고를 작성하던 중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현역 벤처인’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던 그는 한국 기술창업과 벤처생태계, 그리고 의료기기 산업을 개척한 혁신가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