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네이처’(1964)와 ‘사이언스’(1976)에 연구논문 게재
국제생물학연구사업 주도하여 한국 생물학의 국제화에 기여
우수한 과학 후속세대 양성하여 한국 생물학 연구를 도약
故 강영선
前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17~1999)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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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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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79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및 동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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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974
국제생물학연구사업(IBP)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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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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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선 교수는 동물학, 세포학, 유전학, 발생학 등의 연구를 태동시킨 ‘한국 현대 생물학 연구의 대부’다.
1917년에 태어난 강영선은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의 지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1941년 홋카이도제국대학 동물학과에 입학 후 신생 분야인 세포학에 관심을 가졌다. 세포학 가운데서도 당시 첨단과학으로 각광받고 있던 염색체 연구에 흥미를 느꼈다. 1943년 졸업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야생쥐를 대상으로 세포학적 연구를 수행해 9편의 논문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중에는 기존 정설을 깨뜨리고 다란성 여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성과도 있었다.
1945년 한국으로 돌아온 강영선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창설에 앞장섰다. 한국 대학의 첫 생물학과였으며, 교과과정 마련, 교수진 확보, 교재 집필 등을 주도했다.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그는 학생들 교육과 한편으로는 과학연구에 힘썼다. 그는 해외 연수의 기회를 얻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에서 인류유전학을 접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연구 훈련에 참여해서는 최신 유전학 연구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 미국 우스터실험생물학재단의 스톤(David Stone)과 공동연구를 통해 헬라세포보다 암세포가 더 많은 새로운 암세포주의 분리에 성공하여 그 성과를 1964년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제자 박은호와 공동으로 어류 세포배양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어류의 핵형 보존과 DNA 함량과의 관계를 규명한 논문을 1976년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찍이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한국인 과학자가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은 극히 드물고 이례적이었다.
이와 함께 강영선은 과학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 운영에도 중점을 두었다. 우수한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들이 새로운 생물학 분야를 개척해 나가도록 뒷받침했다. 이로써 세포유전학에서 시작된 연구는 점차 집단유전학, 발생생리학, 초파리유전학, 어류유전학, 분자생물학, 암세포생물학, 미생물학 등으로 분화되어 나갔다. 결국 순전히 국내에서 교육과 연구 경력을 쌓은 연구자들이 주축을 이룬 생물학 연구학파가 강영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들로부터 한국 현대 생물학이 분지되어 나갔다. 조완규와 박상대는 그의 대표적인 제자들로 이후에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도교수와 학생이 공히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함께 유공자가 된 첫 번째 사례다.
또한 강영선은 생물학 연구의 수준 향상을 위해 그 국제화를 위해서도 진력했다. 그는 해외 연수나 훈련, 학회에 적극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저널에도 연구성과를 활발히 발표했다. 무엇보다 1965년부터 추진된 국제생물학연구사업(IBP) 한국위원회 위원장으로 한국의 생물 생산성, 자연자원 보존, 인류의 적응 등의 조사연구를 총괄했다. 약 10년 동안 진행된 이 국제적 연구사업은 한국의 생물학 연구, 연구자들의 학술교류, 국제적 연구협력 등의 진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한편으로 강영선은 국내 생물학계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도 앞장섰다. 한국동물학회와 한국생물과학협회 회장을 맡아 생명과학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65년 한국자연보존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과 협력하여 설악산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제정 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주요 지역의 생물이나 천연자원 등에 대한 정책연구를 수행하여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연구논문 158편, 저역서 17권을 남겼다.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많이 남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여러 상을 받았다.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1963)을 비롯하여 과학기술상(1970), 국민훈장 동백장(1971), 하은생물학상(1972), 국민훈장 모란장(1982), 5.16민족상(1989) 등이 그것들이다.
강영선 교수는 일찍이 세계적 저널에 연구업적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후학을 많이 배출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한국 현대 생물학 연구는 후학들이 이끄는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며 급속히 발전되어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