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여건에서 우주선(宇宙線) 측정성과 창출 및 실험연구 수행
박사 150명을 포함한 한국 물리학 연구를 이끌 후속세대 양성
저술활동을 통해 물리학 교육, 과학 대중화, 기초과학 진흥에 기여
故 권영대
前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1908~1985)
- 학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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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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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978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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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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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대 교수는 열악한 환경에서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 측정 연구, 우수한 후진 양성, 한국물리학회의 성장을 이끌어 한국 물리학의 학문공동체 기틀을 세운 선구적인 물리학자이자 많은 물리학자들의 스승이다.
그는 1908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서울로 가서 중등과정을 마쳤는데, 이 시기에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일본 홋카이도제국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고, 분광학 연구로 졸업논문을 썼다. 1933년 귀국한 그는 해방될 때까지 개성에서 중등학교 교사로 지냈다. 해방이 되자 서울의 경성공업전문학교를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
해방 이후 모든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권영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실험연구를 시도했고 우주선 연구와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한 물질입자 연구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제자들과 함께 직접 만든 ‘가이거 계수기’를 이용해 우주선 연구를 시작했고 특히 1956년에는 한라산 정상에서 해안까지 고도에 따른 우주선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했다. 이를 계기로 1957년에는 브리스톨대학 윌스물리학연구소에서 9개월간 선진적인 우주선 연구의 경험을 쌓았다. 또한 브리스톨대학에서는 사이클로트론의 양성자빔으로 구리표적을 때렸을 때 발생하는 입자의 조성에 대한 연구도 수행했는데, 이 연구결과는 1961년 그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가 되었다.
권영대의 연구는 제자들에게 연구를 통한 교육과 실험적 연구의 기회를 주었다. 제자들은 그와 함께 여러 실험 기기를 제작했고, 한라산 우주선 관측에 참여했다. 1959년에는 한국에서 처음 독자적인 사이클로트론 제작을 시도해 양성자빔이 성공적으로 인출되었다. 사이클로트론의 규모가 작아 실질적인 연구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제자들에게 연구의 매력과 연구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었다. 그 결과로 그는 서울대 재임기간 동안 박사 150명을 포함해 많은 제자들을 연구자로 키웠다. 한국 물리학의 성장 초기 단계에서 그와 제자들이 기여한 바 크다.
그의 또 다른 업적은 물리학에서 학술연구 공동체의 기초를 튼튼히 한 것이다. 권영대는 1952년 한국물리학회 창립회원이었고, 이후 운영위원, 부회장 등의 직책을 맡아 학회 초기부터 운영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0년부터 10년간 회장을 장기간 역임하면서 한국물리학회의 체계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 시기에 회원 수가 급속히 증가했고, 전국에 걸쳐 지부가 창립되었으며, 분과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또한 국문 및 영문 학술지를 차례로 창간하고 국내외 석학의 초청 강연을 개최하는 등 연구성과의 발표와 물리학자들의 국내외 교류를 위한 장을 마련했다.
물리학 교육과 연구 외에 권영대가 관심을 기울였던 영역은 물리학 교재와 과학 대중서 발간, 그리고 과학진흥 활동이었다. 이렇다 할 물리학 책이 없던 시절에 그는 고등학교 물리학 교과서와 대학 교재, 과학교양서를 포함해 17권을 집필 또는 번역 출간했다. 나아가 과학 소개, 과학정책, 과학대중화, 과학사상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여러 지면에 발표했다. 또한 한국해양학회 부회장, 한국자연과학협회장, 한국과학사학회장, 국제측지학 및 지구물리학 연맹 한국위원장 등의 활동을 통해 과학진흥에 폭넓게 기여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1957년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고, 문화포장(1963), 과학기술상 본상(1967), 국민훈장 동백장(1971), 3·1문화상(1973), 국민훈장 무궁화장(1982), 대한민국학술원상 공로상(1984)을 받았다.
권영대 교수는 해방과 전쟁의 격변, 그리고 이어지는 어려운 시기에 한국에서 물리학 연구와 교육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틀을 세운 선각자였다. 그는 변변한 실험가구 하나 없는 환경에서도 우주선 측정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자였고, 수많은 물리학자를 길러낸 스승이었고, 학회 조직화와 체계화를 이끈 리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