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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영중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작성일
2020-04-20
조회수
27274

천연물 연구를 국제적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 여성과학자 김영중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의 약용식물 자원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생약학자’. 일생을 천연물 연구에 바친 김영중 박사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더 명쾌한 수식은 없다. 잡초보다 질긴 약초 사랑으로 황무지나 다름없던 국내 천연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고 생약학 및 천연물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른바 ‘김영중 학파’를 일군 장본인. 김영중 박사를 만나 생약학 르네상스를 일으키기까지 고군분투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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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고난을 기회로 전환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최초’라는 수식보다 ‘최고’라는 수식이 더 어울린다. 천연물 연구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글로벌 과학자 김영중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한 번 파고든 건 끝장을 봐야할 정도로 근성과 승부욕이 있었던 그녀는 공부를 곧잘 하는 우등생이었다. 무릎이 닳도록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곤 했던 그를 괴롭힌 건 선천적인 허약 체질이었다.

학창시절의 병약했던 기억은 김영중 박사로 하여금 무엇보다 건강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이후 대학 전공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좋은 약을 개발해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부푼 품을 안고 1968년 서울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암울한 시대 상황과 여전히 허약한 몸 때문에 부모님의 걱정은 계속되었고 그는 현실도피 겸 홀로서기를 위한 방책으로 유학에 뜻을 두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시점에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 4학년때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장시간 배를 타는 여정에 대해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어요. 결국 졸업여행을 포기해야 했지요.”

동기들과의 마지막 추억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된 탓에 상심해 있던 어느 날, 광화문을 지나던 그녀의 눈에 한 공고문이 들어왔다. 문교부에서 주관하는 유학 시험 공고였다. 김영중 박사는 유학 시험 준비에 매달렸고, 꿈을 향한 그녀의 달음박질은 합격으로 이어졌다. 그토록 꿈꾸던 유학길에 오르며 김영중 박사는 과학자의 길로 성큼 다가섰다.

 

천연물 연구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오늘날 천연물은 합성의약품의 한계와 부작용을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리 주목받는 분야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천연물 연구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지만, 과학자로서 김영중 박사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서울대 약학대를 졸업한 김영중 박사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생화학 석사학위를, 미국 일리노이아 대학에서 영양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서울대학교 교수 임용 기회가 주어져 32세란 젊은 나이에 교편을 잡았지만, 교수가 된 이후에는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방학 때마다 사비를 털어 미국으로 갔다. 1년 중 8개월은 교수생활을 하고 나머지 4개월은 미국 대학의 무급 연구원이 되는 이중 생활을 10년 동안 계속했다. 선진 과학기술을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내 것으로 흡수하겠다는 열의,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낙후된 천연물 연구를 빨리 타 분야 연구와 비슷한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다짐은 김영중 박사에게 시간에 대한 특별한 철학을 갖게 했다.

특히 여러 질환 가운데 주로 치매나 간 질환 그리고 골다공증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 외국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5년간 연구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당시 선정된 김박사의 연구 과제는 미 정부 평가단으로부터 상위 2.7% 이내에 포함된다는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이를 통해 국내외 천연물 관련 분야의 연구 기반을 확립할 수 있었고, 2000년에는 국가주도 천연물 신약개발 연구프로젝트를 조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사명과 신념을 바탕으로 일군 약초원과 라이브러리

천연물로 질병을 정복하려는 그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식물 자원이 미래 고부가가치산업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김영중 박사는 쓸모 없는 국유지를 찾아다니고 사유지를 국유지와 바꾸는 등 땅을 확보하는 일부터 공사, 예산 확보, 약초 심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끝에 경기도 일산, 시흥, 파주 일대에 8만 5천여 평에 이르는 국내 천연물 약초원 및 수목원을 조성했다.

또한 천연물 연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천연물 추출물 은행' 및 '천연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 한국에서 생겨나는 희귀 천연물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연구개발 체계 구축을 위해 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활용성을 높이고자 했다. 약초원이 천연물 연구를 위한 핵심 기반시설로 자리를 잡으면서 김영중 박사는 논문 250여 편을 발표했다. 또한 특허 30건 등록 및 2건 기술이전을 통해 국내 천연물 연구를 선도하고 그 산업화에도 기여했다. 이와 함께 보건산업진흥원 이사,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중앙약사심의 위원 및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 정책 심의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후학 양성에도 힘써 21명의 박사와 55명의 석사를 배출하여 국내 천연물 연구 및 신약개발 연구가 도약,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에 2019년 과학기술유공자에 지정되었다. “여자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남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이 납니다. 편견과 한계에 무너졌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명과 신념 위에 살아온 연구자. 그렇게 작고 약한 한 여성 과학도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세계적인 과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김영중 유공자 인터뷰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VXph3PPZt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