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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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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설계한 과학기술행정가

의약품·농약 성분 국산화와 정밀화학 산업 기반 구축
물질특허 시대를 대비한 신물질 창출 연구체제 확립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설립 등 과학기술 진흥정책 주도

#1.(표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한 과학기술행정가 채영복 ● 의약품·농약 성분 국산화와 정밀화학 산업 기반 구축 ● 물질특허 시대를 대비한 신물질 창출 연구체제 확립 ●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설립 등 과학기술 진흥정책 주도 #2. 학력 1959 서울대학교 화학과 졸업 1961 독일 뮌헨대학 화학 Diplom 1965 독일 뮌헨대학 유기화학 박사 경력 1969~1978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유기합성연구실 실장 1978~1982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응용화학연구부 부장 1982~1993 한국화학연구소 소장 1994~1995 대한화학회 회장 2002~2003 제4대 과학기술부 장관 2005~2008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포상 1976 국민훈장 동백장 1980 3.1문화상 1997 운경상 2004 청조근정훈장 2006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 #3. “우리 세대는 주어진 일을 ‘어떻게 잘하느냐’는 패러다임에서 최선을 다했다. 후배 세대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패러다임 앞에 서 있다. 찾아내야 한다. 지혜와 창의력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가 쌓아온 경륜과 지혜를 나눠줘 다시 한번 도약할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 채영복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남다른 혜안과 지혜로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온 거목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를 매 순간 고민하며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 온 그는 과학자이자 과학기술 행정 전문가이다. #4. 채영복 박사는 1937년 강원도 금화군에서 태어났다. 집에 회계를 맡아주는 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월남하면서 집안 형편은 크게 어려워졌다. 형편 상 학교를 다니다 쉬기를 반복해야만 했지만, 우등상을 놓지지 않았던 그는 예산농고, 경동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5. 1959년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독일로 떠났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뮌헨공대에 입학한 그는 1964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페오도르 리넨(Feodor Lynen) 박사의 지도 아래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 유학 시절에 대해 “세계 최고의 생화학 및 유기화학 스승을 만나 화학 합성에 대한 기초를 든든하게 다졌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때 독일에서의 경험은 우리나라 정밀화학 분야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6. 1969년 귀국한 그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이하 KIST) 유기합성연구실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당시 KIST의 미션은 기술자립이었다. 하지만 선진국 기술을 국산화하여 도입한 기술을 계량하는 일을 수행하고 지도할 선배나 전문가는 전무한 상황이었다.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해야만 했다. 울산에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던 그는 석유화학 다운스트림1) 국산화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중에서도 타겟은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의약품과 농약이었다. 1) 다운스트림 : 원료를 가공하여 최종 제품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단계. #7. 당시 우리나라는 의약품과 농약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종근당, 동아제약과 같은 제약사들이 있었지만 기술 수준이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비해 취약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은 외국 기업들의 카르텔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채 장관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산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외국 제약사들의 회유와 훼방은 계속됐다. 그래도 그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는데, 당시 외국 제약사의 직원이 “채영복은 철저한 민족주의자다. 어찌 할 수 없다”는 보고서를 썼을 정도로 그의 의지는 완강했다.

채영복8. 유기화학 전문가로서 새로운 제조공법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았다. 항결핵제 에탐부톨(Ethambuto) 합성에서는 아메리칸시안아미드(American Cyanamid) 회사로부터의 기술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다른 원료 물질을 사용하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해 이를 극복했다. 이렇게 난관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던 연구팀은 마침내 1972년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에탐부톨 개발에 성공했고, 한독약품에 기술을 이전해 우리나라 결핵 퇴치에 크게 기여했다. 에탐부톨 국산화의 성공은 우리나라 의약품 생산의 기폭제가 됐다.

#9. 이외에도 채 박사는 구충제 메벤다졸, 세파로스포린계 항생제의 새로운 합성법 개발을 연이어 성공하며 국산화를 이뤄냈다. 기술 이전으로 수입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서 소비자 가격도 절반으로 줄었고, 이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에게 큰 힘이 됐다. 국산화 연구가 성공하면서 연구실에는 용역을 맡기려는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0. 그가 다음으로 눈을 돌린 곳은 농약 분야였다. 식량 자립이 화두였던 시기에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선 농약 개발이 시급했다. 그러나 농약의 주성분 역시 다국적 기업이 독점하고 있었고, 합성 기술이 특허로 보호되고 있어 가격이 고가였다. 그는 자신의 유기 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농약 분야에서도 살균제, 제초제, 살충제 등 다양한 원제의 국산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국내 식량 확보에 기여했다. #11. 그는 농약 원재료의 국산화 과정에서 생산 공정의 안전성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카바메이트계 살충제 제조에 필요한 MIC(메틸이소시아네이트) 생산의 경우, 독가스인 포스겐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반응 과정에서 독가스 누출의 우려가 많았다. 그는 기존의 방법보다 안전한 공정을 개발하며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 전 세계에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12. 더 나아가 그는 정밀화학이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관련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고부가가치, 고수익성의 장점은 있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에 집중해 단일화하기 힘든 업종을 한데 묶어 정밀화학산업으로 지칭했다. 1981년 3월 채영복 당시 KIST 응용화학연구부장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정밀화학육성방안’ 초안을 바탕으로 6대 국책연구분야 육성 계획이 확정됐고, 이는 우리나라 정밀화학 국책연구의 시발점이 됐다. #13. 1982년 한국화학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한 그는 국산화 연구의 다음 단계인 신물질 창출 연구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돌입했다. 미국의 농약회사 FMC, 독일의 의약품 제조사 훽스트 등 다국적 기업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신약·신농약 개발에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14. 특히,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한국화학연구소의 자회사로 설립한 에이블케미칼테크놀러지(이하 ACT)는 그가 시도한 선구적인 사례였다. 그는 ACT가 분석한 미국의 기술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전략을 세웠다. 성과도 어느 정도 있었던 참신한 시도였지만 당시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휩쓸려 빛은 보지 못했다. #15. 그는 연구개발 체제 확립의 대가였다. 2002년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취임한 후에는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들을 추진했고, 과학기술인공제회 및 과학기술연합대학교 설립으로 전문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데 앞장섰으며, 대덕연구개발특구 발전을 위한 정주여건 개선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밖에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유치를 통해 글로벌 수준의 연구를 위한 기반을 확립했다. #16. 채영복 박사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2004)과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2014)을 받았으며, 3.1문화상(1982)과 국민훈장 동백장(1976) 등을 수상했다. 채 장관은 탁월한 과학자이자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교육 체제를 설계한 행정가였다. 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과학기술 자립의 토대는 후배 과학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더 큰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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