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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욱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작성일
2019-04-26
조회수
124,542

IT벤처 업계 스승, ‘대한민국’의 명예를 받들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권욱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동구간제어’ 이론 최초 규명…12개 벤처기업 배출 등 벤처 육성 공로 인정

“과학기술인들이 사회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역할 해야”

 

휴맥스, 슈프리마, 파인디지털, 우리기술 등.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유명한 이 회사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권욱현 사단’이라는 이름표다. 권욱현 사단의 시작은 1980년대 서울대학교 제어정보연구실. 본격적으로 벤처 붐이 일기 훨씬 전부터 연구실은 ‘창업사관학교’로 불리며 1세대 벤처인들의 산파 역할을 했다. 권욱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구논문만을 중시하는 기존 대학의 가치관을 깨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창업의 열정을 전달했다. 그의 가르침은 국내 벤처기업의 태동을 이끌었으며, 현재 권욱현 사단의 기업들은 상장사로서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벤처기업의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벤처 산파로 유명한 권 교수는 학문적 욕구를 채우는 데도 욕심이 많은 천생 학자다. 특히 ‘이동구간제어(Receding Horizon Control)’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계 최초로 일반화하는 데 성공, 자동제어 분야의 학문적 위상을 높인 업적은 현재까지도 산업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영문저서 ‘Receding Horizon Control(Springer, 2005)’과 ‘Stabilizing and Optimizing Control for Time-Delay System(Springer, 2018)’ 등을 저술하고 관련 내용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18년 대한민국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된 권 교수는 최고의 명예를 받들게 됐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땀과 열정이 서린 서울대 자동화시스템공동연구소에서 권 교수를 만났다.

 

Q.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대단히 영광입니다. 공과대학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뿐만 아니라 산학 협력을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이를 인정받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자로 이름을 올린만큼 앞으로 유공자로서 해야 할 역할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과분한 ‘유공자’의 지위를 받았으니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지요. 먼저 과학기술유공자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에 맞는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준다거나, 연구해온 경험을 나누어 주는 저술활동이나 강연, 사회봉사 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기술인이 사회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노력하려고 합니다.

 

Q. 기술벤처 창업을 장려한 공학자로 명성이 높으십니다. 어떻게 일찍부터 창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1981년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였어요. 스탠포드대학 졸업생들이 대기업 대신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기업이 튼튼해야 나라가 잘 살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기업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창업을 해야 생겨날 수 있어요. 제가 속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졸업하면 깊은 생각 없이 교수를 지망하거나, 대기업에 가지요. 창업은 아예 고민하질 않습니다. 자신이 창업을 했을 때 얼마나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합니다. 교수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능력이 사회를 위해 쓰였을 때 얼마나 큰 파급력을 미칠지 헤아려보지 않을 수 없죠. 창업에 성공했을 때 이룰 수 있는 좋은 일들을 꾸준히 설명해 왔습니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지요.

 

Q. 교수님 휘하에서 공부한 많은 졸업생들이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연구실의 독특한 문화를 꼽습니다.

일단 제 연구실에 들어오면 무조건 물건(시스템)을 만들게 했습니다. 경험을 통해 방법을 체득하길 바랐어요. 그 결과 여러 시스템이 만들어졌죠. 프로젝트가 없어도 다른 재원을 활용해서 만든 것도 있었고요. 한 번, 두 번 만들다 보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걸 내가 만들 수 있다는 도전정신도 솟지요. 창업할 때 그런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거든요. 또 저희 연구실은 팀 단위로 움직였어요. 회사의 조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5명 내외의 팀이 꾸려지면, 그 팀의 팀장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요. 선후배로 구성된 팀의 친밀도와 단결력이 강해질수록 성과도 크지요. 마지막 한 가지는 ‘우리가 못하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예요. 제가 운이 좋았죠. 훌륭한 학생들이 많았고 그들이 승부욕도 갖고 있었어요. 덕분에 창업을 통해 성공한 제자들이 많아졌어요. 무척 감사한 일이에요.

 

Q. 교수님이 개발하신 과학기술 계산 소프트웨어 패키지 ‘셈툴’도 상용화가 되었습니다.

전 목표를 세우고 일하는 편입니다. 아주 좋은 논문을 쓰자, 영문 교과서를 집필하자, 학생들의 창업을 독려하자, 국내 자동제어학회를 창설하자, 자동제어 분야 국제학회장이 되자 등등 목표를 세우고 거의 전부를 이뤄왔어요. 우리나라에 필요한 범용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남겨 주고 싶다는 소망도 그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은 대학에서 개발된 범용 소프트웨어 패키지가 기업으로 가서 사업화되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실적이 없었거든요. 또 소프트웨어는 해외에서 개발된 1등 제품이 국내수요를 전부 독식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개발해도 판매가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발동한 것이 바로 ‘우리가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는 자신감이었어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채 모든 어려움을 뚫고 성공하고 싶었어요. 시간과 돈, 그리고 열정을 가장 많이 쏟아 부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셈툴’은 과학기술분야에서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과학기술 계산 패키지(computing package)입니다. 그런데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나 외부 기관의 재정 지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선 범용 소프트웨어 패키지는 만들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우여곡절 끝에 2000년 Auto Code 기능이 포함된 상업용 소프트웨어 패키지 셈툴 v 4.0을 개발했고, 2002년에는 MATLAB 코드와 교환되는 셈툴 5,0, 2006년에는 다양한 고급 기능이 포함된 셈툴 6,0을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개발 이후 교육용으로 여러 대학에 무상으로 공급했고, 일부는 유료로 판매되어 많은 대학의 200여개 강좌에서 사용되었습니다.

 

Q. 우리나라의 현재 창업 문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창업활성화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이나 중국 시장에 벤처 기업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시장이 크기 때문이에요. 시장이 크면 회사의 잠재력도 커지고, 벤처캐피털의 투자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거든요. 기업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장 자체가 작고, 미래 가치를 인정받기가 대단히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어요. 여기에 따른 세밀한 지원 정책과 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출지향적인 창업을 하게 되면 국내 시장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정부의 지원도 여기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그동안 받은 상금과 제자들이 함께 모은 12억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기부에 대해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래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어릴 때부터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움을 받았던 학교와 봉사했던 기관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부도 저의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브라운대학교, 제어로봇시스템학회, 대한전기학회 등 몸담았던 곳에 기부를 하고, 봉사를 했죠. 성공한 과학기술인이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권욱현 젊은 연구자 논문상’이 만들어진 계기를 소개해주십시오.

제어로봇시스템학회는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고, 또 회장까지 역임했던 단체인지라 애틋함을 갖고 있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부의 뜻을 밝혔는데, 상을 제정하면서 저의 이름을 붙여 주셨더라고요. 제게는 아주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Q. 교육자로서 지켜온 철학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학교수는 연구자 이전에 교육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학생 한 명, 한 명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할 의무가 있지요. 전공 교육 외에 추가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어였습니다. 모든 학생에게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게 훈련을 시켰어요. 직접 영어 발음을 고쳐주기도 했고, 필요하다면 영어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수강비를 지원해 줬지요. 발표력이 부족한 친구에게는 적절한 조언과 함께 선후배와 연결시켜 배울 수 있도록 살폈어요. 졸업할 때 보면 모두 자기 생각을 잘 발표할 정도의 영어 스피치 능력을 갖게 되더라고요.

저는 어느 한 능력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전 능력의 총합은 누구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논문을 잘 못 쓰는 학생들은 다른 능력이 있다고 여겨 그 능력을 키워주려 노력했습니다. 제 연구실에서 논문 잘 못 쓴다고 학위 못 받은 제자는 없어요. 박사 55명을 포함해 대학원생 130여 명을 졸업시켰는데 지금도 모든 제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제자들이 가장 큰 자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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